“운명”...故 윤정희, 영원한 ‘시’가 되어[2023 BIFF]
5일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CGV에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특별상영 영화 ‘시’ 스페셜 토크가 열렸다. 이창동 감독과 고 윤정희 남편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참석했다.
이창동 감독은 “올해 1월 윤정희 씨가 세상을 떠나고 부산영화제에서 특별 공로상을 수여하고 이런 자리를 만들어 준 것에 뜻깊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백건우 선생님이 이런 자리가 어색할 수 있는데 기꺼이 자리해 줘서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윤정희는 1967년 강대진 감독의 ‘청춘극장’을 시작으로 3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등 국내 유수 영화제에서 무려 7번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뛰어난 미모와 스타성으로 문희, 故남정임과 함께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를 형성했다. 영화 ‘시’에서 치매로 기억이 망가져가던 미자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고, 알츠하이머로 투병하다 지난 1월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유학 생활하면서 음악에서 쓴 시간과 영화를 본 시간이 비슷할 것 같다”며 “제가 영화인은 아닌데 고맙게도 부산국제영화제 1회 때 초청받아 온 가족이 왔다. 1회 때부터 대규모 축제를 하기 힘든데, 너무 잘 진행돼서 아름다운 축제였다”고 부산영화제와 얽힌 추억을 회상했다.
윤정희 백건우 부부의 딸 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 씨도 스페셜 토크 행사장을 찾아 객석에서 함께했다. 앞서 백진희 씨는 전날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추모 무대를 꾸미는 동시에 올해의 한국영화 공로상을 받게 된 윤정희 대신 무대에 올라 감사 인사를 전한 바 있다.
이 감독은 윤정희는 ‘시’에 캐스팅한 이유를 묻자 “제가 ‘시’라는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나리오 쓰기 시작하면서 주인공은 윤정희 씨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이 들었다. 윤정희 선생을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10대 때부터 저의 스타, 하늘 높이 있는 존재였는데 영화제에서 백건우 선생님과 함께 인사드릴 기회가 있었고 짧게 대화를 나눈 기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 분에게 느끼는 개성과 내면이 제가 만들려고 하는 ‘시’의 주인공 미자의 성격과 매우 닮아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인공 이름이 미자인데, 윤정희 선생님 본명이 손미자다. 본명을 알고 있었는데, 시나리오 쓸 때는 의식하지 못했다. 주인공 양미자로 지은 건 옛날 사람 이름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인이라고 생각해서 아름다울 미(美)자를 생각했다. 윤정희 선생님과 본명이 똑같다. 백건우 선생님이 나중에 이야기해 준 건 윤정희 씨와 매우 닮아있다고 하더라. 그런 점으로 보면 저는 윤정희 선생님과 운명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서 만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사실상 윤정희 선생님의 병이 시작된 것이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때 의심하고 있었다. 촬영 중에 그 병이 시작된 것 같았다. 치매가 시작된 배우가 작품을 통해서 시작됐다는 것도 가슴 아픈 거지만 운명적이라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이 감독은 “백건우 씨와 따님이 듣기 거북할 수도 있다. 제가 촬영 중에 몇달 동안 그 병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 이유가 촬영 초반부에 윤정희 씨가 기억력이 아주 좋았다. 초반부에 학부형으로부터 전화 받는 장면이 꽤 긴 롱테이크였다. 2분 30초 정도 혼자서 대사하는 장면이다. 그 롱테이크를 대사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혼자서 하는 게 젊은 배우도 꽤 힘들어한다. 다 외워서 자연스럽게 한다는 게. 그 장면을 테이크 받아 시작해서 끝까지 첫 번째 테이크로 오케이가 난 장면이다.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긴 대사를 혼자서 했다. 젊은 배우도 힘들어하는 걸 했다”고 회상했다.
계속해서 “점점 대사를 기억하는 게 힘들어했다. 결정적인 건 피해자 소녀의 엄마를 찾아가는 거였는데 엄마에게 부모를 대신해서 협상하고 설득한다. 그렇게 주변 풍경이 아름다우니까 소녀 감성에 도취 돼서 엄마를 만났을 때 뭐 때문에 만났는지 잊어버리고 돌아서는 장면에서 시나리오 받았을 때부터 그 장면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저에게도 몇 번 잘 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결정적인 심리적인 붕괴가 이뤄지는 장면이다. 그 장면을 걱정하고 신경을 많이 썼는데 나중에 이야기하길 전날 백건우 선생님과 집에서 대사 연습을 했다더라. 그게 너무 잘됐다고 하더라. 이걸 그대로 촬영장에 가져가야겠다고 간직하고 잠들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 제작부가 선생님 댁으로 가서 차로 모시고 촬영장까지 오는데 서울에서 홍천까지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때 픽업한 친구가 처음 들어온 친구라 고속도로 진입부터 길을 헤맨 거다. 당신은 조급하고 잘 간직했던 그 어제의 감정이 훼손될까봐 조마조마했던 거다. 계속 헤매서 촬영장에 1시간 늦게 도착했는데 그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힘들어져서 촬영을 못 하겠다고 울면서 그러더라. 저희는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 설득해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그때 이미 대사를 단 한마디도 다음 대사를 기억 못하더라.그 전부터 악화되어 있었는데 그때가 거의 결정적이었다고 본다”고 이야기했다.
이 감독은 “여러분도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대사를 못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나빠졌는데 그 역할을 어떻게 끝까지 해냈는지 궁금할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신 거다. 그게 배우의 힘이랄까. 매직이랄까 그런 거다. 윤정희라는 배우가 갖고 있던 에너지와 힘이다. 그런 어려움에서도 기억력이 나빠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끝까지 모든 장면에 모든 커트에 나오고 혼자서 대사를 하면서도 끝까지 해냈던 것”이라며 고인을 치켜세웠다.
이를 듣고 있던 백건우는 “집에 와서 그 이야기를 하더라”며 “영화를 접할 때 태도가 완벽하게 프로패서널하다. 제가 음악인으로 작업한 거나 배우로서 촬영하는 건 비슷하더라. 제가 그녀를 존경하는 건 옆에서 보면 프로패셔널하다는 걸 느낀다. 옆에서 할 수 있는 건 한도가 있다. 모든 게 그렇다. 모든 일은 자기가 넘겨야 한다. 본인이 잘 연기한 것 같다. 당시 감독님이 잘 감싸줬다고 말하더라”고 부연했다.
이창동 감독은 “시작할 때는 절망적으로 시작했지만 촬영하는 동안 많이 좋아져서 나름의 성취감을 느끼면서 촬영을 마쳤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백건우는 “영화 인생을 이 작품으로 끝낼 수 있다는 건 너무나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시작됐을 때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부산=양소영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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