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분신·자해에 협박 퍼부어도 '집행유예'
80% 이상 집행유예 이하 처분
2년간 2225명이 1심 재판 받아
올해 1~7월 경찰 긴급응급조치
2254건 집행, 작년 건수 넘을듯
"합의 이유로 풀어줘선 안돼"
2021년 12월 경기 시흥시의 한 주택가에서 30대 여성 A씨가 자신을 찾아온 전 남자친구 30대 B씨에게 돌아갈 것을 요구하며 자신의 모친에게 전화하려 하자, B씨는 깨진 소주병으로 자해했다. 이후 B씨는 귀가하는 척하며 3시간 뒤 다시 돌아와 A씨 집의 초인종을 여러 번 누르고, A씨에게 문을 열어 달라며 88번 전화를 걸었다. A씨가 밖으로 나오지 않자, 인근 편의점에서 산 라이터 기름을 몸에 뿌린 뒤 문을 열지 않으면 몸에 불을 붙이겠다고 협박했고, 출동한 경찰관 앞에서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사법당국은 같은 달 B씨에게 잠정조치 2호와 3호를 내렸다. 잠정조치 2호는 피해자의 집 100m 이내 접근 금지, 잠정조치 3호는 전자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를 말한다. B씨는 그러나 잠정조치 명령을 받은 지 이틀 만에 피해자의 집을 다시 찾았다. B씨는 특수협박,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흉기 이용), 주거침입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나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재판부는 "범죄가 짧은 기간에 우발적으로 일어났고 피해자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며 이같이 선고했다.
지난 7월 춘천지법 형사1단독은 스토킹처벌법과 특수협박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 모씨(35)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박씨는 지난해 8월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뒤, 같은 해 10월까지 26번에 걸쳐 협박성 문자를 보낸 혐의로 기소됐다. 전 연인의 집과 직장 근처에서 기다린 뒤 협박에 폭행까지 한 혐의 등이 추가됐음에도 집행유예에 그쳤다.
일명 '스토킹처벌법'이 시행(2021년 10월 21일)된 지 만 2년이 돼 가고 있지만, 악질 스토킹에 대한 처벌이 여전히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매일경제가 입수한 대법원의 스토킹처벌법 시행일로부터 올해 6월까지 1~3심 양형 통계에 따르면 80% 이상이 집행유예 이하의 가벼운 처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총 2225명이 1심 재판을 받았고, 이들 중 293명이 항소심, 58명이 상고심 재판까지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1심 재판을 받은 2225명 중 1811명(82%)이 자유형·집행유예·재산형·선고유예·무죄·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나머지 414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을 받은 293명 중 170명은 항소 기각 판결, 47명이 실형, 36명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스토킹처벌법으로 재판을 받은 피고인 숫자는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경찰이 긴급응급조치를 집행한 건수보다 확 떨어진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7월에만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긴급응급조치는 2254건이 집행됐다. 올해 말까지 지난해 전체 긴급응급조치 집행 건수(3403건)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긴급응급조치는 100m 이내 접근 금지, 휴대전화 등 통신 금지 등으로 경찰이 집행한다.
스토킹처벌법상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3년 이하의 징역일 경우 정상참작 사유가 있다면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하다. 악질 스토킹 범죄에도 집행유예 판결이 쏟아지는 이유다.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스토킹 범죄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약한 마음이나 두려움을 악용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합의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감형할 것이 아니라, 재판부가 피해자에게 금전적 배상 등이 적절하게 이루어졌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가해자가 배상 없이 탄원서만 받아낸 경우에는 감형해주지 않는 등의 엄격한 양형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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