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사라지는 홍콩

2023. 10. 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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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
中 오만과 욕심으로 사라져가
홍콩의 다양성 수용 못한다면
중국은 미국 넘어설 수 없을 것

홍콩은 아시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도시(cosmopolitan city)로 군림해왔다. 1995년부터 미국의 헤리티지재단이 평가하고 있는 세계 경제자유도 지수에서 2020년까지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아시아 지역 본부를 설립하고 24시간 움직이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 홍콩이 사라져가고 있다. 2020년 중국 정부가 보안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언론·집회·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면서 체제 비판적인 책을 파는 퉁뤄완(銅라灣) 서점을 운영하던 람웡키(린룽지) 씨가 대만으로 쫓겨났다. 외국인들도 꼬투리를 잡혀 체포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있다.

서양인들이 분위기가 바뀐 홍콩을 찾지 않으면서 인구도 줄고,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 예금이 급속히 이탈하면서 자유 금융 시스템의 핵심인 달러 페그제의 미래에 대해 의문이 커지고 있다.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곳은 오랜 라이벌 싱가포르다. 금융·물류·관광산업 등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해온 터라,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회사도 아시아 본부를 옮기고 있다. 그 결과, 국제금융센터 경쟁에서 마침내 싱가포르는 홍콩을 앞서기 시작했다. 홍콩은 뉴욕, 런던에 이어 글로벌 3위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했고 싱가포르는 4위였지만 최근에는 홍콩과 자리를 바꿨다.

홍콩의 중국화는 1997년 7월 1일, 홍콩 주권이 반환될 때부터 예견되던 일이다. 중국이 홍콩을 자유로운 경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도시로 놓아두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많은 홍콩인들이 국외로 이주했고 대다수가 목적지로 택했던 캐나다 밴쿠버는 홍쿠버라고 불렸다.

중국 정부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내놓은 카드는 2047년까지 홍콩 지위를 보장하는 소위 일국양제(One Country, Two Systems)였다. 타협안을 서둘러 내놓은 것은 외국인 투자가 몰리는 홍콩의 경제적 가치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50년을 보장한 이유는 그 기간이면 중국이 홍콩처럼 선진화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중국이 약속보다 앞서 일국양제 시스템을 사실상 폐기한 것은 2010년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등극하면서 자신감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홍콩의 경제적 가치를 희생하더라도, 중국의 국가사회주의를 확실하게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즉, 홍콩의 국제금융 중심기능이 위축되더라도 홍콩을 통해 자유와 다양성의 가치가 중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중국식 사회주의와 경제 체제만으로도 시진핑 주석이 말하는 2049년 중국몽을 실현시키고 미국을 앞서는 세계 패권국가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깔려 있다.

중국이 과연 미국을 넘어 패권국가가 될 수 있을까?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원제: Danger Zone)'의 저자 마이클 베클리와 할 브랜즈는 부정적이다. 중국은 건강하지 못한 전체주의 국가로, 곧 쇠락할 강대국이라고 단언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의 제재와 중국이 마주치게 될 인구 재앙을 근거로 들고 있다.

중국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은 그것보다 홍콩의 개방과 다양성을 수용할 수 없는 데에서 오는 정치적 리스크일 것이다. 한국이 경제 성장과 동시에 겪었던 민주화와 체제 전환의 고통을 중국이 감내할 수 있을까? 최근 시진핑 주석이 새삼스럽게 개혁과 개방을 강조했다고 하지만 민주주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경제대국이 지속 가능할까? 지금 홍콩의 모습을 보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최광해 칼럼니스트·전 국제통화기금 대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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