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는 괜찮고, 축구응원은 안된다?···‘어뷰징’ 대하는 정부의 이중잣대

대통령실이 진행한 온라인 국민투표가 대규모 어뷰징(중복·편법 투표)으로 무산됐을 때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던 정부·여당이 최근 포털사이트 다음의 중국 댓글 어뷰징 건에 대해선 ‘국기문란’ ‘사회적 재앙’ 등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것을 두고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이중잣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작 국민 실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정책투표를 조작한 건 큰 문제가 아니고, 아시안게임 한·중 축구 응원 클릭 수를 조작한 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이냐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소통 강화 명분으로 실시한 ‘국민투표’는 지난해 7월21일부터 열흘 간 진행됐다. 투표 종료 후 대통령실은 ‘해외 IP 어뷰징’을 이유로 결과를 무효화했다. 당시 경향신문이 투표수 추이를 추적한 결과, 10개 항목이 동시에 급등하거나 하락하는 현상이 발견됐다. 당시 투표에 오른 10개 항목은 동시에 오르고 동시에 내렸다. 투표수 증감 추이도 석연치 않았다. 투표기간은 열흘이었는데, 투표수 99%가 초반 5일에, 나머지 1%가 나머지 5일에 쌓였다.
당시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제도를 남용해 특정 의견을 많이 내려는 것을 수사 대상으로 보긴 어렵다”고 했다. 시간대별 투표 집계 현황 요구에도 “시간대별로 하지 않아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에도 국민투표에서 비슷한 문제가 반복됐다. 대통령실이 지난 3월 실시한 KBS 수신료 국민투표에선 중복댓글·세몰이 등이 확인됐다. 투표는 아이디별로 한 차례만 가능하지만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페이스북 등 각기 다른 아이디로 로그인하면 동일인의 중복 투표가 가능했다. 댓글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반복해서 달 수 있었다. 그 결과 전체 댓글 4건 중 1건은 중복 댓글이었다. 특정 시간대에 댓글이 집중적으로 증가하는 현상도 발견됐다.
당시 정용욱 대통령실 국민제안비서관은 “댓글은 토론이기 때문에 주고받으면 무한정일 수도 있어서 중복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중복 댓글은 문제가 없다는 취지였다. 대통령실은 이후 집회시위 규제강화 국민투표 때는 중복 댓글 발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코드를 아예 삭제했다. 여론을 왜곡할 수 있는 중복 댓글·투표를 원천 차단하는 대신 검증을 못하게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어뷰징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비민주적, 이율배반적이라고 지적한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는 5일 “정부에 유리한 방식으로 소통행위를 통제하려는 비민주적인 행위”라며 “어뷰징은 복합적인 문제여서 강력한 규제로만 해결할 수 없다. 포털 운영과정의 허점을 파고들어 발생한 일을 포털이 가짜뉴스의 온상이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국민투표와 같은 중대한 결정에서의 어뷰징과 이번 어뷰징은 그 부작용의 크기가 전혀 다르다”며 “과거 ‘파맛 첵스’ 사건처럼 응원 투표에서 어뷰징으로 인해 엉뚱한 결과가 나오는 현상은 이전에도 빈번하게 있었다. 하나의 놀이문화를 두고 지금처럼 강경 대응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고 했다.
여권이 이번 일을 두고 ‘여론조작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것은 내년 총선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당이 선거를 앞두고 ‘해외에서의 여론조작’ 가능성을 주장하는 건 처음이 아니다. 20대 총선을 앞 2020년 3월 ‘차이나 게이트’가 대표적인 예다. 당시 극우 사이트를 중심으로 ‘조선족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다’는 가짜뉴스가 퍼지자 김성태 등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은 댓글 국적표기 의무화를 골자로 한 법안 발의를 추진하기도 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여당이 주장하는) 선거 여론조작의 가능성과 이번 어뷰징 사태는 본질적으로 다른 이야기”라며 “이번 사태로 범정부 TF까지 구성하는 건 선거를 앞두고 정권에 유리한 보도가 이뤄지도록 포털을 휘어잡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여론조작 가능성을 차단하는 건 정부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정부가 결론을 정해놓고 접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일회성 사건에 대해 ‘포털을 때려잡자’는 식의 극단적 조치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167002?type=journal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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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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