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광풍에 억울하게 스러진 ‘26살 청년’ 74년만에 고향 제주로

박미라 기자 2023. 10. 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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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형무소 수감 중 골령골서 학살
유전자감식 제주도외서 4·3희생자 첫 확인
5일 유해 송환, 4·3평화공원에 봉안
5일 오후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유족인 며느리 백여옥씨가 74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시아버지 고(故) 김한홍씨 유해에 대한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박미라 기자

제주4·3사건이 발발하면서 많은 제주도민이 군경 토벌대와 무장대를 피해 오름, 동굴, 밭 등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숨어들었다. 1949년 1월 북촌리에 살았던 김한홍씨 역시 마을에서 떨어진 밭에서 숨어 지내던 중 군에 자수하면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소문을 들었다. 하지만 군을 찾아간 그는 주정공장 수용소에 갇혔고, 이후 행방불명됐다.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실종 13년이 지난 후 김씨 사망 신고를 했다. 죽은 날을 몰라 생일날에 제사를 지내며 그를 기려왔다.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을 받고 낯선 타지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가 학살된 ‘26살 청년’이 74년만에 유해가 되어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평생 아버지 흔적을 찾아 헤맸던 아들조차 3년전 고인이 돼 며느리와 손자가 그를 맞이했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5일 오전 김씨의 유해를 청주공항에서 제주공항으로 모시고, 그의 고향인 북촌리에서 봉환식을 가졌다. 이어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신원확인 보고회를 가진 후 그의 유해함을 봉안관에 봉안했다.

며느리 백여옥씨는 이날 “아들은 없지만 제가 대신 아버지를 모신다. 아버지를 찾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남편이 오늘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기뻐했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밝혔다. 백씨는 이어 “4·3으로 아버지를 잃은 남편도 고아였고, 저도 4·3으로 아버지와 친척까지 모두 잃은 고아였다. 4·3만 생각하면 피눈물이 나고,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이날 봉환식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평범한 북촌청년은 74년 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그 가족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수십 년을 피맺힌 한으로 살아왔다”면서 “아들인 고 김문추님은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군사재판 재심을 신청했고, 유해라도 찾으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2018년에는 DNA도 채취하면서 아버지를 찾아 헤맸다”고 말했다.

5일 오전 고(故) 김한홍씨 유해가 유족의 품에 안긴 채 74년만에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공항에서 유해함을 안고 가는 유족들. 제주도 제공

김씨는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 실시 중인 대전 골령골 발굴 유해에 대한 4·3희생자 유전자 감식에서 지난달 처음으로 신원이 확인된 4·3희생자다.

수형인 명부를 보면 김씨는 1949년 7월 불법 군법회의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들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28일부터 7월17일 사이에 대전 골령골에서 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학살됐다. 김씨 역시 대전형무소에 수용됐던 다른 제주도민 300여명과 함께 대전 골령골에서 학살된 것으로 추정돼왔다.

그러던 중 2021년 골령골 제1학살지 A구역에서 발굴된 유해 70구에 대한 유전자 감식에서 1구의 시신이 4·3 당시 대전형무소로 끌려간 제주도민인 김씨로 확인된 것이다. 제주가 아닌 지역에서 4·3희생자의 신원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발굴된 유해 중 신원이 확인된 것은 김씨 이외에 도내 141명 등 모두 142명이 됐다.

제주도는 대전골령골을 비롯해 광주와 전주, 김천 등 4·3수형인의 기록이 남아있는 지역에 대한 유해발굴과 신원확인을 계속적으로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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