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원전 금지” 판결 재판장, 기시다 원전 정책에 “무지는 죄, 침묵은 더 큰 죄”
기시다 총리 원전 확대 정책…“마이너스 100점”
“지진 잦은 일본, 원전 사고 위험 돌이킬 수 없어”
2011년 후쿠시마 도쿄전력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처음으로 일본에서 원전 재가동 금지 판결을 내렸던 히구치 히데아키 전 재판장이 기시다 후미오 현 정권의 원전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히구치 전 재판장은 “지진 위험이 큰 일본에서 원전 사고 위험성에 대해 무지한 것은 죄, 위험성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더 큰 죄”라며 원전 폐쇄를 촉구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2차 방류가 시작된 5일 마이니치신문은 히구치 전 재판장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 원전 정책 위험성을 집중 조명했다. 히구치 전 재판장은 2014년 후쿠이현 오이군 간사이전력 원전 3~4호기 재가동 금지 판결을 내렸다. 오이 원전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에서 처음으로 운영이 재개된 원자로였기 때문에 당시 판결에 큰 관심이 쏠렸다.
재판부는 재가동 금지 결정을 내리면서 “지진의 흔들림에 대비한 예측치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며 간사이전력의 안일한 안전 기준을 강하게 비판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에서 다시 꿈틀대던 원전 재가동 움직임에 재판부가 제동을 건 판결로 평가받는다.
히구치 전 재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원전에 관한 재판을 맡기 전에는 막연히 원전이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면서 “오이 원전의 내진 설계 기준은 지진 강도 6 미만을 견딜 수 있는 700갤런(gal)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2000년 이후 20년 간 일본에서 700갤런 이상의 지반운동을 일으킨 지진은 30회에 달한다. 동일본 대지진의 지반 운동은 최대 2933갤런이었다. 일본 건설업체들은 3000~5000갤런 기준의 내진 설계 주택을 팔고 있다. 마이니치는 원전 내진 설계 기준이 일반 주택보다도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히구치 전 재판장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기적적으로 동일본 멸망을 피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원전 폭발로 도쿄를 포함한 동일본 전체가 궤멸할 뻔 했다고 회고했다”며 “2호기에서 원자로 격납용기가 파손되고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가스 누출로 압력이 강하돼 기적적으로 큰 폭발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동일본대지진과 원전 사고를 겪은 간 전 총리는 “사고 당시는 물론 지금도 도쿄전력의 정보 은폐는 계속되고 있다”며 원전 폐쇄론자로 돌아섰다.
히구치 전 재판장 또한 원전 관련 재판을 이끈 뒤 원전 폐쇄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2017년 은퇴한 뒤에는 <내가 원전을 멈춘 이유> 등의 책을 집필했다. 지난 7월에는 책 <난카이 대지진에도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출간했다. 난카이 지진은 일본 기이수도 해역~시코쿠 남쪽 해역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지진으로, 30년 내 진도 8 이상의 강진이 일어날 확률은 60%에 이른다.
현재 원전 관련 소송 30건 이상이 법원에서 계류 중인 점에 대해 그는 “많은 판사들이 원전 관련 소송이 전문적인 기술 소송이라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정부, 원자력 규제 당국, 전력 회사, 심지어 법원까지도 대중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그가 2014년 내린 오이 원전 재가동 금지 판결도 이후 고등재판소에서 뒤집혔다.
그는 기시다 정부의 원전 정책에 대해 “마이너스 100점”이라며 “이전 정부는 원전 폐쇄에 실패했기 때문에 0점이지만, 기시다 정부는 아예 원전 대폭 확장을 결정했기 때문에 더 나쁜 점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히구치 전 재판장은 일본 전력 공급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4.8%에 불과하다며 “원전을 포기하는 것이 가능한데도 폐쇄를 하지 않는 것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전 위험성을 모르는 것도 죄이지만, 위험성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더 큰 죄”라며 기시다 총리를 향해 “동일본을 멸망시킬 뻔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인가”라고 일침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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