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죄송합니다' 제주4·3 희생자, 74년만 대전 골령골서 귀향
며느리, 손자·손녀 품 영면…"신원확인 온 힘 다할 것"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제주4·3 행방불명 희생자 고(故) 김한홍씨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골령골에서 74년만에 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와 영면에 들었다.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발굴된 4·3 희생자의 유해를 제주로 봉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5일 고인의 고향인 제주시 조천읍 북촌포구 일원에서 봉환식을 거행한 뒤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유해발굴 신원확인 보고회와 유해 봉안식을 개최했다.
제주시 조천면 북촌리 출신인 김씨는 제주4·3 당시 마을과 떨어진 한 밭에서 숨어 지내다 1949년 1월 말 '자수하면 자유롭게 해 주겠다'는 소문에 자수하고, 주정공장수용소에 수용된 뒤 소식이 끊겼다.
김씨의 마지막 기록은 그가 1949년 7월4일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했다는 사실이 담긴 수형인 명부에서 발견됐다.
김씨의 유해는 2021년 대전 골령골 학살터에서 발굴됐고, 최근 제주도 밖에서 행방불명된 제주4·3 희생자 중 처음으로 신원이 확인됐다.
김씨의 유해는 이날 오전 제주국제공항으로 청주발 항공기를 통해 봉환됐다. 며느리와 손자, 손녀와 함께 제주로 돌아온 김씨 유해는 곧장 봉환식이 열리는 고향 북촌리로 향했다. 고인이 나고 자란 집터에서는 그의 한을 위로하는 노제가 열렸다.
꿈에만 그렸을 생가터를 둘러보고 떠난 김씨는 그가 영면에 들 제주4·3평화공원에 이르러 74년 만에 이름을 다시 되찾았다.
흰 보자기에 싸인 유해함에 '김한홍' 세글자가 적힌 이름표를 붙인 며느리 백여옥씨(82)는 "아들 대신 제가 왔습니다, 아버지"라고 말하며 연신 이름 석자를 쓰다듬었다.
공항에서부터 통한의 눈물을 감추지 못한 백씨는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기구한 사연을 털어놨다. 김씨의 아들이자 백씨의 남편인 김문추씨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성치 않은 몸으로 2018년 채혈한 후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다 2020년 세상을 떠났다.
백씨 역시 4·3사건 당시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외가 친척 등 10명이 넘는 가족을 잃었다. 백씨 아버지도 시아버지 김씨와 마찬가지로 불법 군사재판을 받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
백씨는 "제 아버지도 대전형무소에 있다가 돌아가셨다"며 "저도, 신랑님도 고아로 컸는데 남편은 죽게 고생만 하고 그토록 애타게 그리던 아버지가 돌아오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지금 눈물이 난다"고 오열했다.
그러면서 "살아있었다면 이런 즐거운 날 얼마나 기뻐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아버님을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이 없다"고 흐느꼈다.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골령골에서 70년 넘는 세월 동안 눈 감지 못했을 김한홍 선생님, 행방불명된 4·3영령들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이제 그리던 고향에 돌아왔으니 며느리와 손자 품에서 눈 감으시고 안식에 드시길 기원한다. 며느리 백여옥 선생님의 아버지를 찾는 순간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이날 열린 봉환식에서 "돌아가신 날을 몰라 생신날을 제삿날로 모셔야 했던 가족들의 원통함은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며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광주와 전주, 김천 등 4·3 수형인의 기록이 남아 있는 지역에 대한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피력했다. 대전 골령골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28일부터 7월17일 사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와 대전·충남지역에서 좌익으로 몰린 민간인들이 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학살돼 묻힌 곳으로, 현재까지 이 곳에서는 총 1441구의 유해가 발굴된 상태다.
도와 재단은 '대전 골령골 발굴 유해 4·3 희생자 유전자 감식 시범사업'을 통해 일차적으로 70구의 유해를 대상으로 유전자 감식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김씨의 신원이 확인됐다.
제주도 등은 대전형무소 수감자 명단을 토대로 4·3희생자 298명이 집단 학살된 후 대전 골령골에 묻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oho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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