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개 십자가로 그린 오페라 ‘노르마’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3. 10. 5. 15: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거장 연출가 알렉스 오예 인터뷰

종교와 사랑, 금기와 열망 뒤섞인 광기

“고대 여성의 갈등, 파격적으로 재해석”

박찬욱·김기덕 등 韓영화팬 “또 오겠다”

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된 오페라 ‘노르마’의 한 장면. 수천개 십자가가 무대를 감싸고 있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3500개의 십자가로 빽빽히 둘러싸인 무대는 천국과 지옥 사이 ‘연옥’을 연상시킨다. 아름답기도, 기괴하기도 한 모습으로 관객을 압도하고, 오페라 ‘노르마’에 담긴 심오함을 단번에 각인시킨다.

지난 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된 노르마가 이달 26~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실험성으로 정평이 난 스페인 출신 연출가 알렉스 오예의 현대적 해석과 파격적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예 감독은 인형극·연극 연출로 경력을 시작해 스페인 극단 ‘라 푸라 델스 바우스’를 공동창립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과 세계 명문 극장의 오페라를 연출하는 등 공연예술계 거장으로 꼽힌다.

원작 ‘노르마’는 이탈리아 작곡가 빈첸초 벨리니가 만들어 1831년 초연됐다. 극중 시대적 배경은 기원전 50년경. 고대 종교 드루이드의 여사제 노르마와 아달지사, 로마 총독 폴리오네의 비극적 삼각관계를 다룬다. 권력과 갈등, 금기과 열망 등 모순된 상황과 감정이 극을 지배한다. 노르마가 부르는 아리아 ‘정결한 여신이여’(Casta Diva) 등 아름다운 선율과 고난도 기교로 ‘벨칸토 오페라’의 정수로 불린다.

오예 감독은 이 작품에 현대 스페인을 접목했다. 20세기 스페인 독재와 내전, 지금까지도 다수 종교인 가톨릭에 대한 은유가 가득하다. 최근 공연 준비차 내한해 매일경제와 만난 그는 “전통적인 오페라 형식을 깨부쉈다”며 “관객이 참여하지 않고 느낄 수 없다면 오페라는 그냥 박물관 속 작품으로 남고 말 것”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한국 관객에게 유럽 정서가 공감대를 자아낼 수 있을까. 감독은 주인공 노르마가 대변하는 여성상에 주목한다. “작품의 중요한 키워드는 ‘광기’예요. 극한의 감정과 충동, 증오, 그 안에 사랑과 시기, 질투가 융합돼있죠. 노르마는 그 감정을 모두 보여주는 살아있는 캐릭터입니다. 대사제인 노르마를 현실 종교의 가톨릭 교황으로 비유할 수도 있고,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 볼 수도 있어요. 관객 누구나 노르마와 교감할 수 있을 겁니다.”

이달 26~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일 오페라 ‘노르마’의 무대를 살펴보는 연출가 알렉스 오예.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오예 감독의 이번 방한 기간은 단 일주일. 이미 여러 차례 해외 무대에 올랐던 공연임에도 바쁜 일정을 쪼개 제작진과 가수들을 만나고 공연장을 확인했다. 그가 전달한 요구사항은 ‘머리가 아닌 감정으로 일하라’는 것이다. 가령 아리아를 부르면서 과장되게 두 팔을 활짝 벌리는 가수가 있다면 “당신은 애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러느냐”고 다그친단다. 보여주기 위한 연기가 아니라 감정을 녹여 이입하라는 게 그의 연출지론이다. 이번 무대에서 노르마 역을 맡은 소프라노 여지원과 데시레 랑카토레 등에 대해서도 “노래를 잘할 뿐 아니라 실감나게 연기하는 분들”이라며 “실제 무대를 보면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방한엔 우리나라 예술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도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 온 건 처음이지만 영화 ‘올드보이’ 등으로 한국 문화를 접했어요. 배우 황정민과 박찬욱 감독, 고 김기덕 감독의 큰 팬이죠. 올해 63세가 되면서 하고 싶은 일 위주로만 받고 있긴 하지만, 한국에서 새로운 작품을 제안받거나 연결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언제든 달려올게요.”

이달 26~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노르마’ 공연을 앞두고 방한해 취재진과 만난 스페인 출신 연출가 알렉스 오예.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이달 26~2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노르마’ 공연을 앞두고 방한해 취재진과 만난 스페인 출신 연출가 알렉스 오예. 사진제공=예술의전당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