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핑 제니도 반한 600만불의 화가…고요한 응시로 우리를 위안한다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10. 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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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크리스티 88억 낙찰
가장 비싼 40대 작가로 두각
코로나 시대 위로하는 자연과
고요함을 담은 정물화로 인기
스포츠와 일상, 화폭에 담아
‘블핑’ 제니 등 팝스타도 열광
‘블랙핑크’ 제니와 함께 전시장에서 셀카를 찍은 조나스 우드. [작가 인스타그램]
미술시장 완전정복 ⑲ 21세기 정물화가, 조나스 우드
텅 빈 테니스 코트가 눈 앞에 있습니다. 객석은 비어 있고, 선수도 보이지 않습니다. 경기는 아마 끝이 난 뒤겠지요. 관중을 대신해 화초와 농구공이 그려졌습니다. 광고판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이 화폭에 담긴 건 고요함(Tranquility)입니다. 작년 가을 뉴욕 가고시안에서 연 개인전에서 조나스 우드(Jonas wood·46)는 16개의 테니스 코트를 그려 전시했습니다.
2021년 가고시안 뉴욕에서 열린 전시 ‘Four Tennis Courts’ 전시 전경. 농구공과 화초가 함께 그려졌다. [가고시안]
스포츠와 자연. 우드가 그리는 세계입니다. 꽃과 농구공이 한 화폭에 담기고, 일본식 정원과 테니스 코트가 모두 응시의 대상이 됩니다.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 실내장식 등 우드는 다양한 다른 장르로 분류되는 그림을 그립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 속에는 특별히 선택된 것이 정돈되어 담긴다는 점에서 모두 정물화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뉴발란스 농구화를 신은 ‘21세기 정물화가’는 600만 달러의 사나이가 됐습니다. 2021년 5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세운 신기록 덕분입니다. 그의 대표적 정물화 ‘플로럴 패턴이 있는 두 테이블’은 651만 달러(악 88억원)에 낙찰되며, 코로나19 시대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갖가지 모양의 화병에는 꽃과 갖가지 화초들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작가의 대표적 도상이 모인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입니다. 평온함과 고요함이 담긴 그의 정물화는 역병으로 지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플로럴 패턴이 있는 두 테이블’ [크리스티]
지난 10년간 로켓처럼 가격이 치솟고 있는 우드는 이 시대의 가장 비싼 작가 중 한 명입니다. 40대 작가 중에 아드리안 게니와 함께 500만 달러가 넘는 시장가를 형성한 세 손가락에 드는 블루칩 작가가 됐습니다.
프리즈 서울에 전시된 ‘밤에 피어난 풍경을 담은 화분’
최근 프리즈 서울에서 가고시안 부스의 오른쪽 벽면을 장식한 간판 작품도 380만달러(약 51억원)에 나온 우드의 ‘밤에 피어난 풍경을 담은 화분’이었습니다. 풍경 화분(landscape pots) 시리즈는 가장 인기가 많은 그의 대표작이죠. 실제로 그는 많은 도자기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아내인 유명 도예가 시오 쿠사카의 도자기는 그의 화폭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며 남편에게 지속적인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아내 시오 쿠사카를 그린 ‘Shio with Dogs 2’ [데이비드 코단스키]
그가 새로운 시대의 정물화가인 것은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놓인 소품만 그리지 않아서입니다. 마치 포토샵으로 이미지를 합성한 것처럼, 화분 속에 풍경을 담기도 하고 사람과 반려동물을 함께 그리기도 합니다. 전통을 벗어난 과감한 배치, 그림자가 없는 구불구불한 선, 대담한 패턴과 색은 우드의 전매특허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정물에 담는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당신은 내 작품을 시각적 일기라 부를 수도 있고 심지어 개인사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저와 상관없는 것을 그리진 않습니다. 제가 그릴 수 있는 모든 가능한 것들 중에서 흥미로운 것을 정직하게 그립니다.”

1977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우드는 프란시스 베이컨, 알렉산더 칼더, 짐 다인, 로버트 마더웰, 래리 리버스, 앤디 워홀과 같은 예술가의 작품이 가득한 할아버지의 미술 컬렉션에 둘러싸여 자랐습니다. 이들에 관해 가족과 이야기했던 성장기가 큰 영향을 주었다고 고백합니다.

뉴욕주 호바트&윌리엄스미스 대학과 워싱턴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학생 시절에 자신과 친구, 주변을 찍은 사진으로 콜라주 작업을 했습니다. LA로 이주한 이후 로라 오웬스의 조수로 일한 작가는 2002년부터 아내와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마치 인쇄물처럼 보이는 그의 그림은 평평한 형태를 사용해 깊이를 담아냅니다. 사진을 기반으로 콜라주 작업을 해온 그의 초기 작업이 완성시킨 특유의 화법일 것입니다. 입체적인 세계를 평면적인 색채와 선으로 표현하는 화법으로 인해 그를 ‘데이비드 호크니의 적자’로 부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서부의 뜨거운 햇살아래에서 대표작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을 완성한 호크니처럼 캘리포니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자신감 넘치지만 불안한 공간감을 주는 설득력 있는 병치(竝置)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9년작 ‘사슴과 피카소’에 피카소의 도상을 숨겨 놓았다. [데이비드 코단스키]
우드 또한 호크니처럼 자신의 그림 속에 많은 것을 숨겨놓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같은 이전 시대의 거장이나 동시대 화가의 작품을 그려넣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사물과 실내장식, 사람을 함께 그립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물하는 점이 그의 작품에 매료되는 이유일 겁니다.

동부에서 자랐지만 그는 서부에 가장 어울리는 화가로 자리잡았습니다. 2010년 LA의 해머 뮤지엄에서 첫 미술관 전시를 열며 스타가 됐습니다. 세계 최대 화랑 중 하나인 가고시안의 대표작가로 전세계를 전시와 아트페어로 누비고 있습니다. LA를 대표하는 신생 공간인 데이비드 코단스키에서도 지속적으로 개인전을 열며, 할리우드 스타들이 사랑하는 작가가 됐습니다.

그는 스포츠와 대중문화가 ‘새로운 종교’가 된 시대에 어울리는 화가이기도 합니다. 스포츠를 향한 넘치는 애정으로 테니스 코트와 래리 버드 같은 NBA 스타와 농구공을 그린 작품을 여러번 전시했습니다. 그의 스튜디오와 개인전은 농구 선수와 ‘블랙핑크’ 제니 같은 팝스타들이 빈번하게 방문합니다. 인스타그램으로 스타들과의 셀카를 올리고, 전시를 자랑하는 것은 오늘의 화가들에게 타율이 높은 성공 전략일 겁니다.

다양한 소재를 탐구하는 이유는 결국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일겁니다. 작년 컬처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야기꾼입니다. 어떤 이야기는 참, 어떤 이야기는 거짓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그것을 진실로 보이게 만든다는 겁니다.” 그가 들려줄 새로운 이야기들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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