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출산’으로 세상 빛 본 아이, 삶의 ‘무게’는 그때부터 시작된다[창간기획]
‘위기 아동’을 보호하고자 지난 6월30일 출생통보제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어 9월21일엔 보호출산제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출생통보제는 병원에서 태어난 아동은 모두 출생신고가 되도록 병원에도 신고 의무를 부여한다. 보호출산제는 신원이 알려지는 걸 꺼려해 ‘병원 밖 출산’을 택하는 위기 임산부를 위해 ‘익명’으로 병원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보호출산제 본회의 통과 시 모두 내년 7월부터 시행된다.
위기 아동을 보호한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아동단체·미혼모단체·입양인단체 등은 ‘보호출산제’ 도입에 반대했다. 정확하게는 출생통보제와 병행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우려했다. 위기 임산부 지원체계를 먼저 구축하지 않은 점, 보호대상아동이 살면서 어려움을 겪는 점, 친생부모에 관한 아동의 알 권리가 제한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경향신문은 과거 ‘보호대상아동’이었던 세 사람을 만났다. 이들은 제도의 절차가 끝나는 순간 시작되는 ‘아동의 삶’을 이야기했다. ‘버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삶의 많은 순간을 관통했다. 친부모에 관해 알지 못하는 건 이제는 어른이 된 이들에게도 여전한 ‘숙제’였다. 이들은 보호출산제가 아동의 생명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생애까지 ‘보호’하길 바란다고 했다.
“나는 춘천조씨의 최초의 조상”···‘고아호적’으로 산다는 것
지난달 12일 만난 조민호씨(49)는 인터뷰 중 ‘진실’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49세라는 나이, ‘조민호’라는 이름, 그리고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 대한 모든 것들이 그가 찾고자 하는 ‘진실’이다. 조씨는 자신의 인생을 건 진실게임이 ‘고아호적’(단독호적)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강원 춘천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조씨는 4~5살로 ‘추정’되는 1977년 춘천시장에서 어머니의 손을 놓쳤다. 부모가 있는 ‘미아’였지만 조씨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인근 보육원에 맡겨졌다. 시설들이 경쟁적으로 해외입양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해외입양을 위해 조씨는 ‘고아호적’에 올랐다.
조씨가 기자에게 보여준 호적은 ‘부’와 ‘모’의 이름이 공란이었다. 본적은 최초로 맡겨진 보육원 주소이고, 본관은 지자체장이 임의로 창설한 ‘춘천 조씨’이다. 조씨는 “아마 지구상에 춘천 조씨는 나밖에 없을 것”이라며 허탈한 듯 웃었다. 조씨는 ‘고아호적’으로 사는 게 “붕 떠다니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가도 ‘춘천 조씨는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며 “편견과 차별의 모든 소나기를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베이비박스 아동 80%는 ‘시설 보호’···보호출산 아동은 ‘정서적 지지’ 받을 수 있을까
현 절차상 보호출산 아동은 유기된 ‘베이비박스 아동’과 비슷한 절차를 거쳐 사회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 친생부모에 대한 정보가 기록으로 남는다는 차이가 있지만 지자체장이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하고, 부모가 아동을 직접 입양기관에 의뢰하지 않는다는 점은 유사하다.
감사원의 ‘보호대상아동 지원 실태’ 감사 자료(2019년)에 따르면 2014~2018년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 962명 중 929명은 먼저 시설로 보내졌다. 감사원이 이후 보호실태를 추적해보니 929명 중 47명은 원가정으로 복귀했고 111명은 입양됐다. 가정위탁은 17명이었다. 나머지 748명(77.8%)은 시설에서 보호되고 있었다.
시설보호 아동 다수는 여러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자료에 따르면 아동복지시설 보호아동의 70% 정도가 심리정서행동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시설에서 퇴소한 5년차 이내 자립준비청년 2명 중 1명은 자살을 생각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열린 ‘자립준비청년과의 동행’ 포럼에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 참석한 장인우씨(25)는 “예비 자립준비청년일 때부터 정서적 지지체계, 사회적 친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함께 살던 할머니의 병환이 심해진 후 공동생활가정에 들어갔고 4년 전 퇴소했다. 그는 “공동생활가정에서 지내면서 갑자기 아무런 연고가 없던 지역에서 학교에 다니게 됐는데 겉도는 느낌도 있고, 살짝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 사귀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친구들에게 공동생활가정에서 지낸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장씨가 전문대학 졸업 후 진로를 정할 때 같이 고민을 나눌 사람은 공동생활가정 교사 1명뿐이었다. 그는 “학교 다닐 때 보호대상아동이라는 게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교류 기회가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립준비 5년 차인 장씨는 다른 대학에 편입해 현재 졸업을 앞두고 있다. 현재는 정부의 자립수당이나 자립지원전담인력 외에 굿네이버스에서도 지원을 받고 있지만 내년이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그는 “스스로 열심히 자립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주변인에게 자립준비청년인 걸 알렸을 때 동정하는 시선이 힘들었다”고 했다
평생 가는 질문, “날 진짜로 버린 게 아닐까”
보호출산 아동은 아동권리보장원이 보관하고 있는 출생증서에 대한 공개 청구를 할 수 있다. 다만 친생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전체 정보를 볼 수 있다. 동의가 없으면 친생부모의 인적사항은 제외한 출생증서를 제공받는다. 이는 입양특례법상 입양아동과 동일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독일의 ‘신뢰출산제’에 비하면 아동의 알 권리가 더 제한적이라고 평가한다. 독일은 친생부모가 동의하지 않을 시 법원에서 양측의 사정을 따져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정체성을 알 권리’는 아동의 삶에서 어떤 의미일까. 조씨는 수용소와 같았던 원주의 보육원을 17살에 탈출한 후 춘천으로 넘어가 어릴 때 지냈던 보육원과 춘천시청 등을 찾았지만, 친부모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었다. ‘부모가 날 버리지 않았다’는 마음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제가 검정고시 보고 대학 가려고 5수를 했거든요. 그때 부모님을 찾아야하겠다는 마음이 조금씩 멀어졌어요. 왜냐면 ‘정말 엄마·아빠가 날 버렸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후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며 마음을 다잡은 조씨는 30년째 친부모를 찾고 있다.
민영창 국내입양인연대 대표(51)는 만 1살 때 아이가 생기지 않는 시골의 한 부부에게 ‘비밀입양’ 됐다. 민 대표는 지난달 17일 기자와 만나 “내가 어떤 배경에서 태어나 버려지게 된 건지, 혹은 친생부모는 왜 나를 포기한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고 그 질문은 평생을 간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입양한 부모님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으로 키웠다”면서 ‘이 질문’은 입양가정의 환경, 입양부모의 양육태도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민 대표는 성인이 된 후 어머니가 알려준 ‘친생 어머니가 살았던 동네’를 찾아갔다고 했다. 친부모에 대한 ‘공식 기록’이 없어 “그 동네의 옛 풍경 사진을 보고 난 후 친생 어머니가 어렵게 살았다는 것을 유추했다”며 “그것만으로도 스스로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장인우씨도 보호출산제와 관련해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친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장씨는 “시설 선생님들이 부모님처럼 대해주셔도 친구들이랑 가족 이야기할 때 ‘내 엄마 내 아빠는 누구일까’ 궁금해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아무리 정책적으로 가정과 같은 환경을 제공해 주더라도 원가정과 같은 환경은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아이가 부모님과 연계할 수 있는, 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과거 민간의 입양기관에서 입양기록을 잃어버리거나 심지어 조작한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는 입양인들이 정보 공개 청구를 해도 알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앞으로는 국가가 책임지니 나아지겠지만 출생기록을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아동에게 어떤 정보까지 공개할 수 있는지, 아동의 처지에서 정보목록을 구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310051455001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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