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은 끝나지 않은 역사”…보고서 낸 고등학생들
‘지난 일을 들춰낸다고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물었다. ‘좋은 대학 가려면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핀잔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일제 강제동원(징용) 피해자인 할아버지·할머니가 겪었던 억울한 삶을 생각하자”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렇게 여름방학을 포함한 두 달간 ‘근로정신대 실상과 해결방안’을 주제로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는 전남도교육청이 지난달 주최한 ‘제13회 전남청소년역사탐구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영암여고 2학년 박다정·최규은양과 1학년 최수진·강예원양의 이야기다. 학생들은 15쪽으로 된 보고서에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와 군함도, 야하타 제철소와 다치소 지하터널, 중국인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해결책, 인식 개선 방법 계획과 실천 등 내용을 담았다.
영암여고에서 지난달 25일 만난 학생들은 박미애 지도교사와 함께 강제동원 역사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논의 중이었다. 팀장인 박다정양은 “강제동원 문제가 끝나지 않은 역사임을 알리는 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지난 3월 학교 내 역사탐방 동아리에서 영화 <군함도>를 보고 강제동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처음에는 배우 송중기의 등장 장면에 환호했지만 영화를 통해 적나라한 당시 상황을 마주하곤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전남청소년역사탐구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7월부터 팀을 꾸려 본격적인 자료 조사에 나섰다.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박 교사의 도움이 컸다. 팀원들 각자 매일 강제동원 관련 도서와 기사, 논문 등을 찾아본 뒤 동아리방에 모여 서로 간 정보를 전달하고 취합했다.
지도교사의 도움을 받아 역사 알리미 홍보물을 직접 제작하고 교내에 게시했다. 학급 별로 강제동원 강연회를 열고 기부 캠페인도 벌였다. 교내 학생 60명을 대상으로 강제동원과 관련한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이들은 “강제동원에 대해 ‘알고 있다’는 학생들은 13명, 21.6%에 불과했다”라며 “교과서에는 강제동원 문제를 한두 문장으로만 다루고 있어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강제동원 피해자를 직접 만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생생한 증언을 담기 위해 생존자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건강상 이유로 만나지 못했다. 대신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을 인터뷰 했다.
강예원양은 “어린 학생들이 당했던 고초는 영화나 책에서 알려진 것보다 더 혹독했다는 것과 생존자들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지 않았다는 얘길 듣고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박다정·최수진양도 “가장 많이 울었던 날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박다정·최수진·강예원양의 꿈은 박 교사와 같은 역사 교사나 학자가 되는 것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실상을 알리는 일은 그 과정 중 하나라고 했다. 이들은 강제동원 문제를 알리기 위한 일본 학생들과의 교류, 다른 학교에서의 강연회 등을 계획하고 있다.
최수진양은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면서 “왜곡 없는 역사를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한 사건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할 것인지에 관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학생들이 대견스럽다”라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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