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보험료율 올려도 소득대체율 동반 인상땐 ‘파탄’ 못막아
연금 보험료율만 15% 인상땐
기금 소진시점 14년 더 늦춰져
소득대체율 50% 인상땐 8년뿐
고갈땐 국가부도사태 마찬가지
연내 인상 불발땐 부담 더 커져
국민연금 재정 곳곳에서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올려도 강력한 재정안정 조치 없이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을 높인다면 연금개혁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과의 미래 약속인 국민연금을 주지 못하는 상황은 ‘국가 부도 사태’와 같은 만큼 미래 세대를 위해 연금 제도를 지속가능하도록 고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베이비부머 세대(1955∼1974년생)가 은퇴하기 전에 보험료율을 높여야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기금 고갈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5일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 급여비 지출액은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10.2%씩 증가하는 반면, 같은 기간 보험료 수입은 연간 2.4%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측됐다. 연금 지출 증가 속도가 수입보다 4.25배 빠르다 보니 기금 고갈 시기도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앞으로 돈을 내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많아져 그동안 쌓여 있던 국민연금 기금이 바닥 나는 구조가 본격화됐다는 분석이다.
현세대가 국민연금을 받기 위해 미래 세대가 부담하는 금액을 일컫는 국민연금의 ‘미적립 부채’는 올해 기준 1825조 원으로 추산됐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80.1%다. 국민연금 가입자(지난 5월 기준 2225만4964명)로 나눠보면 1인당 약 8200만 원을 빚지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 국회가 연금 개혁을 미룬다면 미적립 부채는 2050년 6106조 원으로 늘어난 후 2090년엔 4경4385조 원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GDP 대비 미적립부채 비율도 2050년 109.1%, 2090년 299.3%까지 폭증할 전망이다.
국민연금 곳간에 경고등이 켜지면서 개혁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는 이뤄졌다.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에서도 ‘재정안정파’와 ‘소득보장파’ 모두 보험료율을 올리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연금의 목적인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점에서 양측 간 파열음은 컸다. 하지만 25년째 9%로 동결된 보험료율을 속도감 있게 높이지 못한 채 소득대체율 인상을 병행한다면 개혁 효과는 퇴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공적연금개혁과 재정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 보험료율만 15%로 올릴 경우 기금 소진 시점은 2055년에서 2069년으로 14년 늦춰진다. 반면 보험료율을 15%로 인상하는 동시에 소득대체율을 현재의 40% 정도에서 50%로 올린다면 기금소진 시점은 2063년까지 8년만 연기될 것으로 전망됐다. 내는 돈을 올려도 받는 돈을 늘리면 그만큼 연금개혁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금 고갈 후 대안으로 거론된 ‘부과 방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매년 가입자에게 필요한 만큼 보험료를 걷는 방식인데 보험료율이 최대 35%까지 치솟을 수 있어서다. 재정계산위도 부과 방식은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2055년 기금이 고갈되면 정부가 재정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 역시 국가는 물론 미래세대의 부담을 높일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급여지출액은 올해 39조5210억 원이지만 2080년에는 889조8770억 원으로 GDP의 9.4%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나랏돈으로 국민연금을 주기 시작하면 국가 경제 전체가 흔들리고 세금 인상 요인으로도 작용해 결국 미래세대가 피해를 떠안게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김상균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기금 고갈 후 최후의 수단은 국가 세금인데 이 경우 다른 예산을 줄여야 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국가가 새로운 투자도 못 하고 연구·개발(R&D)도 못 하면 국가 미래가 흔들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25년째 9%로 동결된 보험료율을 이번에 인상하지 못한다면 몇 년 후에는 더 큰 폭으로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경고도 나왔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18.2%)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많이 남아 있을 때 보험료를 걷어야 미래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덜어진다”며 “지금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인상 폭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권도경·정철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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