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략 정치와 가짜 언론의 사악한 결탁[시평]

2023. 10. 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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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
대장동 몸통 날조한 가짜뉴스
대선 직전 좌편향 매체 총출동
물증·검증·반론 건너뛰고 유포
이순신 모략한 당쟁과 판박이
나라 존망 도외시한 풍문탄핵
방치하면 선거 민주주의 파탄

지난해 제20대 대통령선거 3일 전 “대장동 사건의 몸통은 윤석열”이라는 취지의 김만배와 신학림의 거짓 인터뷰가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이는 대장동 사건의 몸통이 윤석열 후보였던 것처럼 조작하고, 대선 직전에 녹취록을 풀어 선거 결과를 역전시키기 위해 기획 날조된 모략성 가짜뉴스였다.

이 가짜뉴스는 공영방송과 이른바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들에 의해 그 ‘참모습’은 철저히 은폐되고, 더 교묘하게 왜곡·과장·증폭됐다. ‘뉴스타파’를 중심으로 경향신문·한겨레·오마이뉴스·KBS·MBC·JTBC·YTN 등 좌편향 언론이 일제히 집중 보도하는 가운데 물증도 검증도 없고, 윤 후보 측의 반론도 없는 일방적인 주장만이 대대적으로 송출됐다. 선거 직전 3일 동안 언론인·정치인·공영방송·뉴스포털·1인 미디어·방송 패널들이 일사불란하게 총동원되면서 이 조작 뉴스는 대선 정국을 장악했다.

그뿐이었나. 김건희 여사가 ‘쥴리’라는 이름의 술집 접대부였다는 가짜 폭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페라가모 구두를 신고 생태탕 집에 출현했다는 돌발 인터뷰,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청담동 모처에서 새벽까지 음주·오락했다는 허위 보도 등 각종 모략성 가짜뉴스가 끊일 날이 없었다. 이런 모략 선동이 주로 민주·정의·개혁을 표방하는 좌편향 언론과 정치 세력에 의해 주도된다는 것은 기가 막히는 모순이다.

사실 이러한 모략 정치와 언론은 오늘만의 현상이 아니라, 과거 조선 왕조에 긴 뿌리를 가지고 유전돼 온 것이다. 조선의 정치는 당쟁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고, 당쟁은 모략을 빼고는 이해할 수 없다. 오늘의 정치와 언론은 조선의 그것들과 겉모습만 빼면 질적으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전 미국 외교관 그레고리 헨더슨은 조선의 당쟁 정치에서 모든 모략과 술책이 동원됐다고 서술했다. 당쟁은 국가의 존망이 달린 위급한 전쟁 상황에서도 쉴 날이 없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순신이 적시에 출병해서 일본군을 막지 않는다는 이간책을 냈다. 선조는 북인 출신 남이신을 보내 조사하게 했다. 남이신은 이간책이 옳다고 허위 보고했다. 남인의 영수 류성룡과 친했던 이순신과 함께 엮어 류성룡까지 잡기 위해서였다. 이순신은 전투 중에 잡혀가 투옥됐다. 나라가 망할 뻔한 순간이었다.

승병을 이끌고 나라를 구했던 서산대사와 사명당까지도 정여립의 난을 취조한 기축옥사 당시 잡혀가 고생했다. 의병장 곽재우는 당쟁에 내몰려 죽음의 위기에서 겨우 생환했으며, 의병장 김덕령은 아예 목숨까지 잃었다. 이처럼 당쟁과 모략 정치는 나라가 망하는 것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자기 당파의 득세와 집권만을 추구했다. 당쟁은 서로를 이단과 사문난적으로 인신공격해 당파 간 타협·조정·공존이 불가능한 정치 실종의 블랙홀 속으로 조선을 몰아넣었다.

이건창의 ‘당의통략’을 보면 당쟁 정치는 증거의 허실을 따지지 않고, 무고와 뜬소문에 기반한 풍문탄핵(風聞彈劾)의 양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상대방을 역모로 몰고, 도덕성을 공격하고, 벽서를 조작하고, 주고받은 편지까지 트집 잡는 수법도 동원됐다. 공론(公論)을 빙자해 서로를 역적으로 몰아 죽이는 일이 당쟁과 모략 정치의 실상이었다. 이건창은 온 나라 사람이 분열해 당쟁한 결과, ‘옳은 것과 그른 것, 순리적인 것과 어지러운 것을 분별해 내지도 못하고, 또 밝게 정론을 세우지도 못했으니 우리 조선의 붕당만이 이 모양’이라고 탄식했다.

당쟁과 모략의 정치는 조선 왕조와 현대의 한국 정치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관통하는 핵심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건창은 언론삼사가 ‘자신의 당만 편드는 도구’로 타락했던 당시의 현실을 개탄하며 ‘오늘날 당인들은 서로 공격하기 전에 반드시 같은 당파를 먼저 언론기관에 포진시켜 놓는다’고 성토했다. 우리는 조선의 언론삼사와 오늘의 언론이 당쟁과 모략 정치의 핵심 주도 기관으로 작동해 오고 있는 구조와 원리를 파악하고 이것을 혁파해야 한다.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에서는 또 어떤 모략이 언론에 도배돼 국민의 이목을 막을 것인가. 모략 정치와 결탁한 우리 언론의 악습을 청산하지 못한다면, 장차 국가 존망의 위기에 내몰리지 않을지 두렵기만 하다.

박승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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