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곤의 재밌는 화약이야기]<3> 우리나라 화약의 역사
[아이뉴스24 강일 기자] 우리나라 화약 역사의 시작이 정확히 언제라고 말할 수 있는 학술적 근거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하지만, 화약무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려 말 최무선 때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사용됐다.
비록 한 구절에 불과하지만, '조선 세조실록'에 ‘화포는 신라에서 시작해 고려 때에 정비됐고, 조선에 와서 완성된 훌륭한 무기’라는 기록이 있다. 아마 삼국시대에도 초기 형태의 화약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다가 원나라의 내정 간섭기에는 화약과 화약 무기 기술이 아예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고대 전투에서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화약무기가 아닐지라도, 유황과 염초 등을 섞어 화약의 연소성을 이용한 사례는 왕왕 있었다. 신채호가 지은 '조선상고사'에는 백제 충신 성충의 어린 시절 야사가 담겨있다. 적장이 보내온 궤짝을 사람들이 불에 넣으려 하니, 성충이 그것을 열어보게 했다. 그 속에는 화약과 염초 따위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 최무선 이전의 화약과 화포 사용 흔적
최무선 이전 신라와 고려 때에 화약무기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아직 입증하기 힘들다. 단편적인 기록 이외에, 유물이나 객관적 사료가 발견되지 않아서이다. 그러나 당나라 대에 이미 화약이 개발되었으므로, 500년 동안 화약이 우리나라에 유입되지 않았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고려에서는 12세기 초 전투에 사용될 정도로 화약 기술이 발전했었다. '고려사'에는 1032년(덕종1) 박원작이 뇌등석포를 비롯한 24종의 무기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1104년 윤관의 여진 정벌 등을 위해 편성한 별무반에서는 화포 담당 부대로 보이는 ‘발화부대’라는 명칭의 특수부대가 있었다. 1123~1127년경 고려에서는 ‘화전(火箭)’을 대량 생산해 도성인 개경과 지방의 군사요충지에 배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화전’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솜을 달아 기름에 적신 불화살이 아니라, 약포 안에 화약이 내장된 폭발성 화살이다.
1135년(인종13) ‘묘청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출정한 토벌군은 투석기를 설치하고 수백 근에 달하는 돌탄을 쏴서 성벽을 부수었다. 그리고 화구(火球)와 같은 초기 형태의 가연성 화약 무기를 사용했다. 이에 앞서 10세기 목종은 무기 전문 제작 기관 군기시(軍器寺)를 설치했다. 문종 때에는 더욱 확충됐다. 문종은 문물과 제도를 정비해 고려의 문화를 활짝 꽃피운 국왕이었다. 문종은 거란에 대비하고, 여진을 견제하면서 윤관의 여진 정벌 기틀을 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청의 난 이후, 무인을 경시하는 정치 상황에 의해 무기 개발 기술은 퇴보하기 시작한다.
원의 눈치를 보던 고려는 1308년(충렬왕34) 군기시를 폐지했다. 1343년에는 무예 연습 훈련장이었던 습사장 마저 없앴다. 바로 이런 탓에 화약과 화약무기의 계승 발전이 끊어진 것 같다. 그러다가 14세기 말이 되면서 고려의 주변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북쪽에서는 여진족이 준동하고 남쪽에서는 왜구가 자주 침입하므로 이들을 격퇴할 무기 개발이 절실해진 것이다.
◇ 최무선은 우리나라에서 실전(失傳)된 화약 발명을 계승
고려는 1362년(공민왕11) 원의 간섭으로 폐지한 군기시를 다시 열었다. 1377년에는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을 만들어 화약 무기 개발에 다시 나섰다. 최무선은 원 간섭기 실전(失傳)된 화약 제조 기술을 재발명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 말 화약 무기의 개발은 왜구 격퇴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고려가 화통도감을 설치한 것은 왜구를 격멸하려는 의지와 함께 국가기관으로서 화약 무기 제조 기술을 보유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고려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개발하는 등 선진 주조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화약만 있다면, 총통 등 화기의 대량 생산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최무선은 화통도감에서 18가지 화약무기를 새로 개발했다. ‘주화(走火)’는 현대의 로켓과 발사 원리가 같은 무기였다. 1378년에는 ‘화통방사군’을 편성하는 등 화기 전문 부대를 창설했다. 화약무기를 규격화하고 표준화한 것은 유럽보다 적어도 3세기 앞선 일이었다. 고려의 화약무기는 조선 초에 이르러 세계 최초 다단계 로켓의 시조 격인 ‘신기전’까지 발전을 거듭했다. 고려 말에서부터 조선을 거쳐 발전된 화약 무기는 왜구의 침략을 방지하고, 나라를 지키는 데 지대한 구실을 했다.
--------------------------------------------------------------
◇ 유지곤 대표. 22세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유지곤폭죽연구소를 창업해 30대 시절 한국 대표 불꽃연출가로 활동했다. 독도 불꽃축제 추진 본부장을 맡아 활동 하면서 본인과 세 자녀의 본적을 독도로 옮긴 바 있으며 한국인 최초로 미국 괌 불꽃축제, 하와이 불꽃축제 감독을 맡았다. 지금은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로봇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
/대전=강일 기자(ki0051@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운세] 11월 9일, 기분 좋은 하루가 예정된 띠는?
- "흑인은 노예농장서 목화 따"…美 대선 다음날 괴문자 살포
- '강남 7중 추돌' 운전자, 신경안정제 검출…'약물운전' 맞았다
- "골든타임 총력"…침몰 금성호 실종자 12명, 밤샘 수색한다
- '20.5kg로 사망'…아내 가두고 굶겨 숨지게 한 50대, 2년형
- 8시간 조사 마친 명태균 "거짓뉴스가 십상시…거짓의 산 무너질 것"
- 초등학교 수영장 女 탈의실에 성인 남성들 들락날락 '무슨 일?'
- [내일날씨] "다시 따뜻해지네"…전국 단풍 절정, 당분간 낮 20도
- [속보] 8시간 조사 마친 명태균 "거짓의 산, 조사 받으며 무너질 것'"
- '시신유기' 장교, 피해자 목소리 흉내내 경찰과 통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