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맥주 1만원 시대’ 코 앞… 오비發 도미노 가격 인상 우려
4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 한 해장국 집. 점심에도 손님 대부분은 상 위에 소주 한 병 혹은 맥주 한 병을 놓고 나눠 마시고 있었다. 메뉴판에는 소주 한 병 6000원, 맥주 한 병 6000원이라는 가격이 선명했다. 일부 고급 맥주는 7000원에 팔렸다.
이날 오전 오비맥주는 오는 11일부터 카스와 한맥 같은 주요 맥주제품 공장 출고가격을 평균 6.9% 올린다고 밝혔다. 현재 1250원 수준인 카스 500밀리리터(ml) 1병 가격은 11일부터 1340원 정도로 오를 전망이다.
계산대 앞에선 주인에게 ‘맥주 값이 오른다고 들었다’고 하자 “메뉴판 숫자를 몇 번 바꿨는지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대로 벽면 메뉴판에는 앞자리에 종이로 두 세 차례 덧댄 자국이 뚜렷했다. 소주 맥주가 한 병에 2000원 혹은 3000원 하던 무렵부터 덮어 씌운 듯 했다. 5000원이 6000원으로 넘어가던 시기에는 아예 숫자 5 아랫 부분을 굵은 검은색으로 채워 6으로 만들었다.
그는 “숫자 고쳐 쓴 지 일 년도 안 지났는데 또 바꿔야 한다”며 “예전 가격 올려 받을 때는 메뉴판도 고쳐주더니 요즘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식당 맥주 1만원 시대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비교적 싼 값에 부담없이 마실 수 있던 ‘서민의 술’ 맥주 가격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올랐다. 제조사가 이달 출고가를 올린 데다, 일선 식당이 여러 유통 과정을 거치면서 생기는 부대 비용을 술값에 전가하면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인상폭은 더 커졌다.
현재 6000원 수준인 대중식당 맥주 가격은 올해 중 7000원에서 8000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일식집과 고급 요리집에서는 병 당 1만원을 호가할 것으로 보인다. 소주와 맥주를 섞는 ‘소맥’은 각 1병만 시켜 마셔도 1만5000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날 오비맥주는 “환율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입에 의존하는 각종 원부자재 가격이 상승했고, 국제유가 급등으로 물류비도 올라 제품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정용 시장에서 많이 팔리는 카스 500ml 캔 제품은 현재 가격을 유지한다고 덧붙였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수입 위주 산업 특성상 팬데믹 이후 비용 상승 압박이 이어졌지만 전반적인 물가불안 상황을 고려해 인상률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오비맥주는 지난해에도 한 차례 카스와 한맥 같은 주요 맥주 가격을 올렸다. 당시 인상폭은 7.7%였다. 인상 이유는 올해와 비슷했다.
오비맥주는 지난해 3월 인상을 앞두고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 차질 여파로 각종 원료와 부자재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해 더 이상 비용 압박을 감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비맥주는 지난해 출고가 인상 이후 2021년 19%였던 영업이익률이 23%로 높아졌다. 영업이익도 998억원 늘었다. 가격 인상분은 손실을 메우는 수준을 넘어 새 영업이익을 1000억원 가까이 늘이는 데 반영됐다.
환율과 고정비용 모두를 반영하는 원가 비중 역시 2020년 41%, 2021년 42%에서 지난해 40%로 떨어졌다. 여러 비용 상승분을 감안해도 원가가 제품 값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줄었다는 의미다.
지난해 오비맥주가 가격 인상 칼을 뽑자, 곧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가 따라왔다. 이들은 최대 8.2%까지 공급가를 높였다.
주류 업계가 일제히 출고가를 올리면 식당에선 인상분보다 몇 배 더 가격이 뛰는 나비효과가 일어난다. 제조사가 만든 맥주를 식당에 공급하는 주류 도매상 마진 20~30%에 식당 주인 이윤까지 붙는 탓이다.
식당들은 보통 요즘같은 물가 상승기에 음식 가격을 올리기 보다, 부대 메뉴에 해당하는 주류 가격을 높여 수익을 극대화한다. 주종에 관계없이 병당 500원을 올리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출고가 인상 때마다 1000원 단위로 가격을 올린다. 지난해 인상 이후 병당 4000~5000원대였던 맥주 값이 올해 병당 5000~6000원대로 오른 것이 그 예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는 이날 오비맥주 발표 이후 ‘공식적으로 인상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맥주 업계 1위 오비맥주가 총대를 메고 가격을 올린 이후 다른 제조사들이 곧 뒤를 따른 전례를 들어 맥주값 도미노 인상에 우려를 나타냈다.
주류업계에서도 오비맥주가 이례적으로 빠르게 ‘기습 인상’을 했다고 평가했다. 보통 주류 업계에서는 관례 상 한 달 혹은 최소 보름 전에 가격 인상을 예고한 이후 가격을 올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인상까지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채 인상을 발표했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초 정부가 ‘물가를 안정 시켜야 한다’고 압박할 때 만해도 맥주 제조사들은 전부 가격을 동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하반기 들어 일본 맥주가 약진하고, 석유 값도 오르면서 연간 매출이 위협 받기 시작하자 태도를 바꿔 오비맥주부터 가격 인상 카드를 뽑아 든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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