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복을 위해 헬조선을 벗어날 용기…개막작 '한국이 싫어서 [시네마 프리뷰]

장아름 기자 2023. 10. 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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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 리뷰
[BIFF]
한국이 싫어서 스틸

(부산=뉴스1) 장아름 기자 = 올해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은 '한국이 싫어서'다. 제목부터 '헬조선'이 쉬이 연상되는 강렬한 제목의 작품이다.

영화는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연출자인 장건재 감독은 책이 출간된 2015년에 이 소설을 봤다고 했다. 그는 당시 한국 사회가 큰 변화를 겪고 있었던 시기였다며 자신에게도 공명하는 부분이 있어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했다.

영화의 초반은 숨 막히는 헬조선 그 자체다. 20대 후반의 여성 주인공의 일상을 통해 한국은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사회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 속에서 주인공이 어떤 결심과 선택을 하는 지점이 그려지면서 이 영화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여운 짙은 메시지가 전달된다.

한국이 싫어서 포스터

이 영화는 계나(고아성 분)의 이야기다. 계나는 안정기에 접어든 정규직 직장인으로 등장한다. 그에게는 대학 시절부터 사귄 취업준비생 남자친구 지명(김우겸 분)이 있다. 남자친구는 책임감도 있어서 계나와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한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진 않지만 따뜻한 가족도 있다. 이들 가족에겐 몇 년만 버티면 새 아파트로 개발이 된다는 희망도 있다.

그럼에도 계나는 한국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결국 그는 가족과 직장, 남자친구를 뒤로 하고 뉴질랜드로 홀연히 떠난다. 그 이유는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다. 영화는 초반부터 계나가 인천 집에서 서울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고, 직장 상사에게 시달리는 지친 일상과 스스로가 이 사회에선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라 객관화하는 모습으로 그가 왜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지 깊이 공감하게끔 감정 이입을 끌어낸다.

부모와 동생, 남자친구부터 대학 친구까지, 계나가 마주하는 일상 속 인물들은 우리 현실에서 보는 평범한 이들의 모습들이다. 이들 인물들은 계나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치며 관계와 서사들을 촘촘하게 이어가고, 자신의 결정을 망설이게끔 하는 존재로도 그려진다. 행복을 위한 선택이지만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도 따르는 감정선까지 연출부터 연기까지 매우 섬세한 표현이 돋보였다.

계나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모험을 하고 싶어한다. 그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과대평가됐다며 춥지 않고 배가 고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복한 순간들을 느낄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반면 공기만 좋으면 됐다는 작은 행복조차도 이루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청춘의 현실도 가슴 아프게 그려진다.

장건재 감독은 이에 대해 "무엇이 그녀를 계속해서 한국이란 사회를 탈출하게끔 만드는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각한다"며 "지금 한국 사회가 젊은 사람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있는가, 기회가 공정하게 돌아가고 있는가 이런 것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그 행복을 찾기 위해 계나가 어떤 선택을 해나가는가'이다. 행복을 실현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건 용기다. 그 용기는 결코 쉽게 발휘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 과정과 감정선을 세밀하게 다루면서 더욱 공감을 끌어낸다.

해외에서의 녹록지 않은 삶도 가감 없이 그려졌다. 계나가 뉴질랜드에서 마주하는 이들과 새로 사귄 사람들의 모습에는 복합적인 현실이 반영돼 있다. 마냥 희망에 차 있지도, 즐겁지만도 않다. 그래서 비로소 자신이 원하고 이루고 싶어하는 행복이 더욱 또렷하게 보이기도 한다.

'한국이 싫어서'가 전하는 희망과 위로가 더 깊이 와닿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계나가 취하고 있는 삶에 대한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며 "손쉽게 뭔가 포기하거나 얻을 수도 있지만 선택 기로에 있을 때마다 택하는 방식은 자기 자존을 지켜나가는 방식이더라"고 밝혔다.

영화에는 월트 디즈니의 그림책 '추위를 싫어한 펭귄'이 등장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펭귄 파블로는 추위가 싫어서 따뜻한 섬에 가고자 한다. 파블로는 계나와도 꼭 닮아있다. 펭귄이 추위를 싫어해서 남극을 떠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아이러니하고, 계나도 한국인이지만 한국이 싫어서 떠나려 한다. 파블로는 꿈에 그리던 섬에 도착해 "다시는 춥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주변의 만류와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이 작은, 자신만의 행복을 실현하고자 하는 용기가 계나의 이야기 그 자체로 일맥상통한다.

aluem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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