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보다 내게 맞는 진짜 인생 찾아 나선 햄릿과 로미오, 그리고 셰익스피어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뮤지컬에서는 고양이들이 무도회를 벌이고('캣츠'), 19세기 오페라하우스에 숨어 사는 괴신사의 러브 스토리가 펼쳐지며('오페라의 유령'), 다양한 동화 속 주인공을 한자리에서 만나기도 한다('숲속으로'). 종합예술인 뮤지컬은 음악과 춤으로 극을 이끌어 가면서 비현실적 비약과 전개가 수월한 장르다. 그래서인지 환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이 많이 시도된다. 그러나 시도되는 작품에 비해 실제 무대에 올라 긍정적 반응을 얻는 작품은 많지 않다. 현실에서 경험하기 힘든 판타지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공감과 설득력을 얻어 내기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창작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에서는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인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 한 공간에서 만나고 갈등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방황한다. 작품 속 셰익스피어는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극작가로 작품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지만 관객의 눈치를 살핀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싶지만 관객의 평가가 신경 쓰여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로 방향을 선회한다. 셰익스피어가 동시에 쓰던 덴마크의 왕가에서 벌어진 정치살인극 '햄릿'과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일어나는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 대본이 갑작스러운 돌개바람에 뒤섞이면서 우리가 알던 익숙한 이야기는 온통 뒤죽박죽된다.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은 판타지적인 설정에 익숙한 이야기를 뒤틀면서 유쾌한 웃음을 준다. 두 세계의 캐릭터가 만나면서 햄릿과 줄리엣은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삶을 고민하게 되고 자의식이 생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햄릿은 복수를 꿈꾸는 대신, 덴마크 왕국의 복잡한 정치사를 훌훌 털어버리고 시를 쓰고픈 문학청년으로 돌아간다. 줄리엣 역시 로미오와 사랑의 노래를 속삭이는 대신 좀 더 활동적인 일들을 하길 원한다. 철없이 사랑의 세레나데를 읊어대던 로미오만이 이런 줄리엣의 돌발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를 햄릿 때문이라 여기고 칼을 뽑는데 햄릿은 싸울 의지가 없다. 순정파 로미오는 덴마크 왕자 햄릿의 상대가 되지 않지만, 햄릿은 분노에 찬 로미오의 시적인 말들에 반하여 사인이라도 해달라 할 기세다.
이처럼 이야기와 인물들을 뒤틀어 예측할 수 없는 엉뚱한 상황으로 이끌어 가면서 뮤지컬은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작품의 중요한 또 하나의 웃음 코드는 작가이자 두 작품의 여러 조역으로 역할 변신을 하는 셰익스피어의 일인 다역 연기다. 극작가 중에는 작품을 쓸 때 작품 속 인물들을 연기하면서 극본을 쓰는 경우가 있다. 셰익스피어는 작품 속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유모와 파리스 백작, 줄리엣의 아버지 그리고 '햄릿'의 선왕과 숙부인 클로디어스 등을 연기하면서 빠르게 다양한 역할로 변신해 웃음을 준다.
이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은 물론 '맥베스', '한여름 밤의 꿈' 등의 유명하고 아름다운 셰익스피어의 대사들을 적절히 장면 속에 녹여낸다. 원작의 유명 대사들이 유쾌하게 변형되는 걸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판타지물이 상황적 개연성을 획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작품 역시 상황의 치밀함은 부족한 편이다. 그 대신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내면서 부족한 개연성을 보완한다. 작가인 셰익스피어조차도 자의식이 생긴 햄릿과 줄리엣을 통제하지 못한다. 햄릿과 줄리엣은 가장 자신다운 일을 찾기 위해 좀 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셰익스피어가 정해 준 햄릿과 줄리엣이라는 이름도 버리고 자기에게 맞는 이름을 찾기 위해 병사2가 되었다가 전령3이 되고 하인2가 되어 보기로 한다. 셰익스피어 역시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인물을 통해 진짜 쓰고 싶은 글을 쓸 용기를 얻게 된다. 작품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 주목도는 낮지만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자아를 찾아가는 힘든 여정을 이어 가는 햄릿과 줄리엣에게 박수를 보낸다.
2021년 3월 초연 이후 지난해 중국 공연과 영국 런던 쇼케이스를 통해 해외 관객과 만나면서 메시지가 단순하고 선명해졌다. 한층 완성도가 높아진 '인사이드 윌리엄'은 12월 3일까지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한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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