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악’ 돈이 피보다 진한 세상 속 위하준의 페이소스 일품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3. 10. 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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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최정배(임성재 분)가 걱정을 담아 말했다. “형도 알아 두시란 거예요. 형 지금 되게 위험한 길로 들어섰다는 거.”

정기철(위하준 분)이 답했다. “뭐 위험해도 해 볼 만한 게 있지 않겠어?”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 ‘최악의 악’ 5화에서 한-중-일 삼각 마약카르텔 결성을 주도한 강남연합의 보스 정기철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다시 만난 첫사랑 유의정(임세미 분)과 새로운 미래를 꿈꿔보겠다는 결심이다.

정기철은 그녀가 무능한 시골 형사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유의정의 신분은 서울경찰청 보안과 경사다. 범죄집단 수괴와 경찰의 사랑이라니. 최정배는 그 관계가 정기철과 강남연합에 큰 위기를 몰고 올 것을 예감했던 것이다.

인생은 위험관리란 사실을 정기철이라고 모를까? 하지만 더러는 위험을 감수할만큼 중요한 관계도 있는 법이고 정기철에게 유의정은 충분히 그런 존재다. 그녀는 다시 못 올 밝았던 시절의 편린이고 가치였다.

역삼고등학교 유일의 단칸방집 아들 정기철은 불우한 환경에도 양지를 지향하던 학생였다. 성당 성가대로 활동하며 선배인 유의정에게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그렇게 아름다운 청춘의 시간을 망가뜨린 건 주폭 아버지였다.

엄마에 대한 일방적 폭행을 못참고 정기철은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며 정기철은 찾아오면 죽여버리겠다고 경고도 날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찾아왔고 그 아버지를 죽인 것은 엄마였다. 살인자의 아들이 된 그 날로 기철의 삶에서 그나마 허락됐던 한 뼘 양지는 유의정과 함께 사라졌다.

‘DJ처리’란 닉네임으로 강남 클럽의 DJ 생활을 영위하던 중 전국구 폭력조직 동혁이파 2인자로 강남을 맡고 있던 장경출(정만식 분)의 눈에 띈다. 장경출은 친구·후배 다 데리고 와 열심히 일하면 나이트클럽 사장을 시켜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이 제안을 믿고 싶던 정기철은 친구들과 합류한다.

이때 최정배가 말했으면 어땠을까? “형도 알아 두시란 거예요. 형 지금 되게 위험한 길로 들어섰다는 거.” 물론 만류는 없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지만 장경출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판돌이’ 출신이라며 모욕만을 안긴다. 또한 조직의 새로운 수입원으로 히로뽕을 유통하자는 제안을 건넸다가 족보있는 건달에게 약장사를 권했다고 폭행만 당한다.

그런 모욕의 나날 끝에 장기철은 친구들에게 묻는다. “니들은 괜찮냐? 이렇게 사는 거?” 그때 최정배는 말한다. “우린 형이 가자고 그러면 지옥 끝까지 간다고!” 장기철과 친구들은 그렇게 위험한 내리막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쿠테타를 기획하고 서종렬(이신기 분)과 연합해 장경출을 제낀다. 이 과정에서 가장 친한 친구 권태호(정재광 분)가 장경출 손에 죽고 기철은 장경출을 살해해 복수한다.

쿠테타는 성공했지만 장경출의 뒷배 손동혁(독고영재 분)을 다독일 필요가 있어 월 5천만원 상납을 약속한다. 그 엄청난 상납금에 손동혁은 기철을 강남 보스로 인정해준다. 기철은 이미 히로뽕 제조자 윤교수(예수정 분)를 섭외해 마약 유통망을 구축, 수입을 창출하고 있었다.

즉 윤교수를 중국으로 보내 중국에서 히로뽕을 제조해 들여오고 강남 클럽 중심으로 유통시키는 한편 일본 야쿠자 요시오카 구미에 수출도 한다. 그렇게 삼각무역 구조가 자리잡자 차도살인의 계를 발휘, 손동혁을 요시오카 구미의 손을 빌어 처리한다.

한편 정기철표 히로뽕 ‘강남 크리스탈’의 부작용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강남 클럽을 중심으로 중독사 사례가 발생하고 일본경시청 역시 요시오카 구미가 한국으로부터 매달 10kg을 공급받는다는 증언을 확보하며 비상이 걸린다.

검·경은 강남 크리스탈 유통의 진원지를 강남연합으로 보고 언더커버로 유의정의 남편 박준모(지창욱 분)를 투입한다. 마약중독자 아버지를 둔 탓에 진급을 못하고 경찰 집안인 처가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하던 준모는 2계급 특진을 약속받고 임무를 맡는다. 신분은 장경출 손에 죽은 권태호의 동갑 사촌 권승호로 위장했다.

정기철로서는 장경출에 이어 손동혁까지 커다란 걸림돌들을 제거해 한숨 돌렸지만 정작 목을 옭아맬 올가미는 발밑에서 스멀스멀 조여오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조직이 커지며 내부단속도 쉽지 않다. 요시오카구미와의 해상 마약거래를 위해 바다낚시를 가던 길. 심복 몇만 아는 정기철의 그 동선에 재건파가 뛰어든다. 정기철은 준모의 희생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그 사건으로 정기철의 심중에 불신의 씨앗이 심어진다. 강남토박이가 아닌 굴러온 돌 박준모와 서종렬은 손을 잡고 그 틈을 크게 벌릴 궁리를 한다. 결국 친구따라 지옥 끝까지 가겠다던 정기철의 역삼고 패밀리는 아무래도 불신지옥을 헤맬 모양이다.

그렇게 친구를 잃고 나면 또 생명의 은인으로 믿었던 박준모가 자신을 잡으려는 형사임을 알게 될 테고, 게다가 첫사랑 유정이 준모의 아내이며 준모의 잠입수사를 빨리 매듭짓기 위해, 즉 자신을 빨리 잡아들이기 위해 자신에게 웃어주었던 것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될테니 그 처지가 가련할 따름이다.

정기철로선 평범한 꿈조차 과욕으로 만든 세상을 원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이 피보다 진한 세상 속으로 뛰어든 것은 정기철 스스로다.

세상에 한 발 한 발 나가는 이상 빠른 길은 없다. 박준모가 그렇다. 마약중독자 아버지를 둔 박준모도 고교시절 대전 전체 짱을 먹던 문제아였다. 하지만 정의로운 순경 석도형(지승현 분)의 만류를 들었고 경찰이 됐다. 유의정이란 아내도 얻었다.

그에 비해 정기철은 구질구질한 인생, 한번에 업그레이드 하길 바랐다. 목표가 돈이 됐다. 그리고 피보다 끈적끈적한 돈의 점액질은 정기철을 우정으로부터, 사랑으로부터 떼어내 저만치 입 벌리고 있는 어둡고 비정한 파국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그러니 최정배는 진작 말했어야 했다. “형도 알아 두시란 거예요. 형 지금 되게 위험한 길로 들어섰다는 거.”

전형적인 느와르적 캐릭터 ‘정기철’을 연기한 위하준의 연기가 짙은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킨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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