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려울수록 동주공제(同舟共濟) 정신으로
지난 8월 필자가 방문한 몽골은 '우유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끝없이 펼쳐진 넓고 광활한 초원에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수많은 동물을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자연환경이 열악해 경종(耕種)농업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에서 우유는 그들 주식의 하나가 되었고, 서구인들의 발전된 가공기술을 거쳐 유제품은 이제 세계적인 식품이 되었다.
서울 올림픽 개최 전까지 '백색 보약'으로 사랑받던 국산 우유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쇠락 중이다. 국산 원유를 사용하는 흰우유 소비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대신 수입산 원료를 주로 사용하는 치즈, 버터 등 유가공품 소비가 꾸준하게 증가하면서 유제품 소비패턴의 괄목할 만한 변화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1인당 마시는 우유 소비량이 20년 만에 36.5kg에서 31.9kg로 줄어든 반면, 유가공품은 27.4kg에서 53.8kg으로 증가했다. 마시는 우유 소비가 부진한 원인은 소비자의 기호 변화, 우유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음료 개발 등을 꼽을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출산율 저하로 인해 우유 소비가 많은 유아~청소년층이 줄어든 탓이 가장 클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소비변화 추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낙농산업과 유가공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올해부터 새로운 원유가격 결정 방식을 도입했다. 이전에는 낙농가의 생산비만 반영해 원유가격을 결정하는 '생산비연동제'를 적용했다면, 올해부터는 유제품 소비시장 상황과 낙농가의 생산비를 함께 고려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고 인구밀도가 높은 탓에 사료 생산 여건이 열악하다. 젖소에게 먹이는 풀사료와 곡물사료를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우유를 생산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국제 사료작물의 공급 상황에 따라 사료값의 변동 폭이 심한 편이다. 작년에는 지구 온난화, 러-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미국과 유럽에서조차 원유가격이 55%, 37%나 상승했고 우리나라도 우유 생산비가 2021년 대비 리터당 115.76원(13.7%) 상승했다.
이처럼 생산비가 급등한 상황에서도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과 정부 중재를 바탕으로 생산자와 유업체는 원유가격을 88원만 인상하고 인상시기도 2개월 미루기로 합의했다. 또한, 유업체는 흰우유 판매가격을 2,900원 후반에서 정하는 등 제품가격 인상 최소화를 밝혔다. 이러한 업계의 고통 분담은 고물가 시대에 소비자의 부담을 줄이고 국산 원유와 유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지만, 효과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생산비 급등으로 인해 소규모 목장의 운영 포기 사례가 잇따르고, 흰우유 소비가 줄어 유업체의 경영상황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언론에서 자주 접한다. 설상가상으로 값싼 해외 멸균 우유 수입이 늘어나고, 대체 음료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동시에 해외에서는 실험실에서 우유를 생산하는 기술 또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낙농과 유가공 연구를 천직으로 여겼던 필자의 근심이 깊어지는 이유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위기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 낙농산업이 가야 할 길은 험난해 보인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정부가 올해 의욕적으로 도입한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조기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미흡한 부분을 보완·발전시켜야 한다. 또 무엇보다 우유 생산비를 낮출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불합리한 관행을 과감히 타파하고 산업 전반에 걸쳐 체질을 개선해야 국내 낙농산업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 낙농산업을 둘러싼 여건이 어려울수록 남 탓만 하면서 서로 다투는 오월동주(吳越同舟)가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동주공제(同舟共濟) 정신을 가져야 거친 파도를 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윤성식 연세대학교 생명과학기술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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