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인상' 역설한 김동철 사장, 한전 '구원 투수' 될까…4분기 요금 시험대
김 사장 "적정 수준 요금 인상 필요"…여당 내부 "총선 전 인상 불가"
유가 급등에 '역마진'‧채권발행 난항…'한전 정상화' 숙제 관건
올해 4분기(10~12월) 전기요금과 관련해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연일 요금인상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여당과 정부 내 미묘한 신경전이 일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 악화를 우려한 여당 내부에서 추가 요금 인상에 난색을 표하는 가운데 김 사장이 총부채 '200조원' 늪에 빠진 한전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 사장은 4일 세종청사 인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적정 수준의 전기료 인상은 반드시 단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kwh(킬로와트시)당으로 책정되는 전기요금 수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부분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에너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한전은 대규모 적자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전력 생산의 주원료로 사용되는 석유와 LNG(액화천연가스) 등 가격이 폭등했지만,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소매 전기요금은 소폭 인상에 그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전기요금의 가격 결정권을 정부가 쥐고 있기 때문에 물가 상승을 우려한 정치권이 가격을 억누르면서 이른바 '역마진 구조'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역마진 구조로 인한 손실을 고스란히 전력 공기업이 홀로 감당하면서, 한전의 부채만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한전의 누적 적자는 약 47조원을 초과했고, 총부채는 201조원에 달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적자 늪에 빠진 한전은 전력 구입을 위한 자금 마련조차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지난해 말 국회가 법 개정을 통해 한전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 5배까지로 증액했지만, 에너지 위기 속에 막대한 채권 발행으로 인해 한도에 거의 근접하며 적신호가 켜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4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 사장이 한전 62년 역사상 첫 정치인 출신 한전 수장으로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각에선 비전문가를 기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김 사장이 시작부터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정면 돌파를 선택하자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사장은 이날 간담회에서도 "당초 지난 2021년부터 연동비 연동제를 시행했는데, 정부가 (연동제를) 약속대로 이행한다면 올해 인상해야 할 전기요금은 (kwh당) 45.3원"이라며 "이 정도 인상하려면 이번(4분기)에는 25.9원 인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달 20일 한전 신임 수장으로 취임한 김 사장이 이슈 파악와 업무 장악 속도가 생명인 정치인 출신답게 에너지 업계의 '뜨거운 감자'인 전기요금 인상안에 대해 연일 소신을 피력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정부‧여당 내부에선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요금 인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지난 3일 원내대책회의 후 전기요금 인상안에 대해 "내년 총선 전에는 안 된다. 총선에 정권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문규 신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역시 인사청문회 및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요금 인상 전에 한전의 재무개선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방 장관은 지난달 13일 인사청문회에서 한전 적자 해소를 위한 근본 해결책이 "전기요금 조정"이라고 했지만, 우선 조건으로 한전의 자구노력을 언급했다. 사실상 4분기 요금 인상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중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전기요금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당 정책위와 산업부 장관은 '요금 동결'에 무게를 뒀지만, 김 사장이 인상 필요성을 연일 강조하는 등 다소 결이 다른 발언이 나오고 있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정부 내부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정치인 출신들이 공기업 수장으로 올 때 가장 크게 기대하는 부분이 윗선의 눈치를 덜 본다는 점"이라며 "4선 의원 출신의 김 사장이 에너지 정책에 대한 정치권 입김을 최대한 배제하고 소신대로 밀어붙일 수 있을 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학과 교수도 통화에서 "학계나 업계에선 김 사장은 요금 인상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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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정주 기자 sagamor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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