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기후소송…현실이 된 미래, 다가온 미래, 다가올 미래

기민도 2023. 10. 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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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몬태나주서 ‘위헌’ 승소하고 유럽선 32개국 제소해 첫 심리
2020년 비슷하게 소송 낸 한국 청소년…헌재는 3년반째 ‘침묵’
미국 몬태나주 정부를 상대로 기후소송을 제기한 그레이스 깁슨스나이더(오른쪽 둘째)를 비롯한 원고들이 지난 6월 20일(현지시각) 헬레나에 위치한 루이스클라크카운티 법원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0년 미국, 포르투갈, 한국 청소년들이 각각 정부를 상대로 ‘기후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정부가 기후변화의 위험을 방치하거나 가속화시킨 데 대한 공적인 책임을 법정에서 가리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이 중 미국 몬태나주 청소년들은 지난 8월 승소하며 3년 전 바랐던 미래를 현실로 만들었고, 포르투갈 청소년들은 지난달 유럽 32개 국가를 법원으로 불러내며 미래에 한발 다가섰습니다. 한국의 청소년들 또한 이들과 같은 해인 2020년 3월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헌법재판소는 아직 조용합니다. 하지만 한국 원고들은 미래는 다가올 수 밖에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다”며 같은 해 일제히 기후소송을 제기한 세 나라의 10~20대 원고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현실이 된 미래, 미국 몬태나주 청소년들의 승리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아직 희망이 있을 줄 몰랐어.”

미국 50개 주에서 제기된 ‘기후소송’에서 첫 승리를 거둔 몬태나주 16명의 청소년 원고 가운데 한명인 그레이스 깁슨스나이더(19)는 지난 8월14일(현지시각) 판결 직후 이런 대화를 친구와 나눴다.

깁슨스나이더가 친구와 이토록 감격을 느낀 까닭은 청소년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이란 생존권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9월21일 한겨레와 한 화상 인터뷰에서 그는 “기후위기는 다음 세대인 청소년들에게 더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며 이것이 얼마나 위협적인 것인지 알기 때문에, 젊은이들 스스로 변화의 주도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기후위기는 온몸으로 체감됐다. 깁슨스나이더는 “몬태나주의 산불 시즌이 길어졌다”고 말했다. 집안이며 동네까지 스며든 매캐한 산불 연기는 목이 아플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집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글레이셔 국립공원’에 있는 빙하는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가 소송을 하게 된 이유다.

2020년 3월13일 깁슨스나이더를 비롯한 청소년 원고들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화석연료 개발을 허용해온 주 정부 정책이 기후위기에 영향을 끼쳤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3년5개월 뒤, 법원은 화석연료사업을 승인할 때 기후영향평가를 금지하는 몬태나주 법률 조항이 주 헌법에 위배된다며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몬태나주는 5천개의 천연가스정과 4천개의 유정, 탄광 6개가 있는 미국 내 화석연료 주요 산지 가운데 하나다.

16살에 소송을 시작해 지금은 대학교 2학년생인 그레이스 깁슨스나이더(19)가 지난 21일 온라인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이 소송을 지원한 비영리단체 ‘우리 아이들의 신뢰’(Our Children’s Trust)는 미국 50개 주에서 비슷한 소송을 진행했는데, 실제 재판이 진행된 곳은 몬태나 주가 처음이었다. 특히 위헌 결정이 나온 것은 1972년에 개정된 몬태나 주의 헌법에서 건강한 환경에 대한 헌법 상의 권리를 명시한 영향이 컸다. ‘주와 개인은 미래 세대를 위해 몬태나의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을 유지·개선해야 한다’는 조항을 작성한 당시 몬태나주 의회 최연소 의원이었던 매 난 엘링슨은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쓴 이 헌법이 자랑스럽다”며 미래 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호하려고 했던 자신의 노력을 법정에서 증언했다.

깁슨스나이더는 엘링슨의 증언을 “이번 소송 과정 중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50년 전 사람들이 몬태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몬태나를 돌보는 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몬태나 주 정부는 주 법원 판결에 반발하며 지난 29일 항소 통지서를 제출했다. 현재 주 의회는 화석연료에 친화적인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네이트 벨린저 ‘우리 아이들의 신뢰’ 소속 변호사는 한겨레에 “몬태나주는 이제 화석연료 프로젝트 허가를 발급하기 전에 기후 변화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며 “정부가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법원에 강제집행 소송을 제기해 이를 준수하도록 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17년 6월17일 포르투갈 중부 페드호가우 그란데에서 산불이 번지고 있다. EPA 연합뉴스

다가온 미래, 유럽 32개국 법정에 세운 포르투갈 청소년들

“드디어 터널 끝, 빛을 보고 있다.”

지난달 27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인권재판소(ECHR)에서 사상 최대 기후소송 심리가 열렸다. 판사 17명, 유럽연합 회원국(27개국)을 비롯한 32개 나라에서 온 80여명의 변호사, 포르투갈 원고 6명과 이들을 돕는 변호사 6명이 심리에 참여했다.

이에 앞선 지난달 11일 전세계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간담회에서 포르투갈 청소년 기후소송의 원고 중 한명인 마르팀 아고스티뉴(20)가 위와 같이 소회를 털어놓았다. 6명의 포르투갈 청소년들은 2017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북쪽 페드호가우 그란데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66명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2019년 9월 기후소송을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했다. 이들은 산불 발생 3년 뒤인 2020년 9월2일 유럽 32개 국가를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고, 그로부터 3년 후인 지난달 27일 드디어 법정 문을 열고 들어섰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이 소송을 지원하는 ‘글로벌 법률 대응 네트워크’(GLAN)의 가루드 오퀸 이사는 “이렇게 많은 국가가 법정 앞에서 스스로를 방어해야 했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유럽 32개 국가를 법정에 세운 안드레(왼쪽부터), 소피아 올리베이라, 카타리네 모타, 마리아나, 마르팀 아고스티뉴, 클라우디아 아고스티뉴가 지난 9월27일(현지시각)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인권재판소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 AP 연합뉴스

소송에 참여한 안드르 올리베이라(15)는 “기후위기는 일상을 침범하는 실질적 위험”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여름 폭염으로 산책과 같은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고, 계절과 상관없는 폭우가 내려 학교에 걸어가지 못하고 차로 등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포르투갈 청소년들은 유럽 나라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아 유럽인권협약 제2조(생명권), 제8조(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 제14조(차별금지) 등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40도가 넘는 폭염과 대형산불에 고통받는 포르투갈 원고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포르투갈 이외 나라들의 의무를 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32개 유럽 나라 정부를 대리하는 변호인들은 원고는 전원 포르투갈 국민이기에 국내 법원을 먼저 거쳤어야 한다며 유럽인권재판소는 관할권이 없다며 맞섰다.

소송 결과는 내년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47개 회원국 재판관 47명으로 구성된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은 각국의 정책을 바꿀 수 있는 구속력이 있다. 원고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32개 유럽 나라 정부는 탄소배출량 감축 계획을 현재보다 더 빠르게 이행하도록 법원의 명령을 받게 된다.

지난 9월27일(현지시각) 스트라스부르 유럽인권재판소에서 소피아(가운데)가 동생 안드르(오른쪽)에게 미소를 짓고 있다. 스트라스부르/AP 연합뉴스

6년 만에 법정 문을 연 포르투갈 원고들은 ‘인내심’과 ‘끈질김’을 강조했다. 안드르는 전 세계에서 기후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는 스피드 보트처럼 빠르게 가고 있고, 정부는 큰 배처럼 천천히 움직인다”며 “큰 배가 돌아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우리가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안드르의 누나인 소피아 올리베이라(18)도 덧붙였다.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미래를 믿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든다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여러분이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니 계속 하세요!”

한국청소년기후행동 소속 19명 원고들이 2020년 3월13일 기후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다가올 미래,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한국 청소년들

“암초를 마주한 큰 배에 탄 일부 승객들이 그 방향이 아니라고 노를 젓고 있지만, 선장과 선원은 이를 무시하고 가는 형국이죠.”

김보림(30)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지난달 25일 서면 및 전화 인터뷰에서 답답함을 호소했다.

미국 몬태나주 16명의 청소년들이 ‘기후소송’을 제기했던 2020년 3월13일, 한국에서도 변화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당시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 19명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과 시행령에 규정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기후변화로부터 청구인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보호하기에 크게 부족하다”며 헌재에 위헌 확인을 청구했다.

국내에는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4일 현재 모두 6건의 기후소송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다. 이 가운데 첫 기후소송의 물꼬를 튼 것이 이들 청소년이다.

하지만 이들은 소송을 제기한 뒤 3년 반이 넘도록 법정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청소년기후행동이 위헌 확인을 청구한 지 딱 2년 만인 지난해 3월13일 전자헌법센터를 통해 ‘쟁점이 많고 사안이 복잡하여 심층적으로 이해 중’이라는 심리 진행 상황 고시만 게시했을 뿐 아무런 답변이 없다.

이 소송부터 지난 7월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와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주도한 다섯번째 소송까지가 모두 첫 소송과 같은 취지다. 관련 법령·법정계획 등에 담긴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해 미래세대를 포함한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지난달 20일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주도한 헌법소원은 기업들한테 기후 관련 위험과 대응, 전략 등의 정보를 공개하는 기후공시를 의무화하지 않아 시민의 환경권까지 위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6건의 기후위기 관련 헌법소원 가운데 아직 판결이 나온 것은 없다. 한국 청소년들은 몬태나주와 포르투갈 청소년들의 사례에서 ‘희망’을 보는 한편,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윤현정(19) 활동가는 “기후위기는 빠르게 대응할수록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문제”라며 “3년 반은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다. 회복 가능한 수준으로 위기를 막아내기엔 시간이 얼마 없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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