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비고령자들, 만성질환 탓에 빨리 죽는다”… 세계 최대 부국의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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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경제활동에 매진할 35~64세 비(非)고령층이 미국에선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이른 죽음을 맞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0년간 사망 기록, 수많은 임상의와 환자·연구자 인터뷰 등을 통해 데이터 분석을 한 결과, "미국인이 더 빨리 죽어가고 있다"는 게 신문의 결론이다.
미국인 기대수명이 대폭 줄어든 결정적 요인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근로연령층(35~64세) 사망자가 두드러질 정도로 많았다는 사실인데, 주요 사인은 비만, 당뇨, 고혈압, 간 질환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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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4세 이른 죽음... 기대수명 대폭 줄어
1980년 선진국 중위권→2020년엔 최하위
부유층-빈곤층 ‘수명 격차’도 갈수록 확대
한참 경제활동에 매진할 35~64세 비(非)고령층이 미국에선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이른 죽음을 맞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악명 높은 총기 사건, 펜타닐 등 마약류 때문이 아니다. 비만, 당뇨 등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을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요인이 컸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로 꼽히지만, 기대수명만큼은 어느새 선진국 최하위로 떨어진 미국 사회의 ‘수명 위기’를 1년간 추적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50년간 사망 기록, 수많은 임상의와 환자·연구자 인터뷰 등을 통해 데이터 분석을 한 결과, “미국인이 더 빨리 죽어가고 있다”는 게 신문의 결론이다.
35~64세 미국인, 만성질환 관리 못 해 죽는다
WP에 따르면, 지난 40년간 선진국 대부분의 기대수명이 의학 기술 발전으로 늘어난 반면 미국은 이례적으로 뒷걸음질을 친 것으로 조사됐다. 1980년 미국인 기대수명(73.7세)은 선진국 16곳 중 중위권이었던 반면, 2020년엔 최하위(76.8세)로 폭락했다. 꾸준한 상승세를 보인 노르웨이(75.7세→83세)에 한참 못 미친 것은 물론, 스코틀랜드(72.2세→78.3세)나 대만(71.8세→81.1세) 등에도 맥없이 추월당했다. ‘세계 최대 부국’의 체면을 구긴 것이다.
유독 미국의 의학 발전이 더딘 탓이 아니다. 미국인 기대수명이 대폭 줄어든 결정적 요인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근로연령층(35~64세) 사망자가 두드러질 정도로 많았다는 사실인데, 주요 사인은 비만, 당뇨, 고혈압, 간 질환 등이었다. 모두 꾸준히 관리만 했다면 치명률을 낮출 수 있는 ‘만성질환’이다. 이로 인한 35~64세 사망자 수는 약물 과다복용, 살인, 극단적 선택, 교통사고 등에 의한 죽음을 모두 합친 것의 2배 이상인데도, 그 심각성이 간과돼 왔다고 WP는 지적했다. 건강 형평성을 연구하는 알린 제로니머스 미시간대 교수도 “정치권은 총기 살인, 오피오이드 중독, HIV에 주목하지만, 미국의 최대 재앙은 (만성질환 방치로 인한) 심혈관 질환과 암”이라고 강조했다.
국민 생명줄 쥔 보험... 돈 없으면 치료 못 받는다
미국 의료 시스템상 빈부 격차도 미국인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보편적이고 공적인 의료 보장이 부족하기 때문에 ‘값비싼 보험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생사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얘기다. 저소득층·장애인 대상 국민 의료 보조제도인 ‘메디케이드’가 존재하나, 지원 자격 유지가 까다롭다. 예컨대 비만 수술처럼 값비싼 처치는 일반 보험으론 지원이 힘들다.
실제로 미국 내 부유층과 빈곤층 간 ‘사망 격차’(기대수명의 차이)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1980년 가장 소득이 적은 카운티의 주민들은 부유한 지역보다 사망 확률이 9% 더 높았지만, 그 격차는 2015년 49%,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61%까지 벌어졌다. WP는 "미국 내 불평등의 지표는 ‘소득’이 아닌, ‘삶과 죽음 자체’가 됐다"고 짚었다.
미국 의료시스템의 고질적 문제가 팬데믹을 계기로 터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취약한 만성질환에 노출된 인구도 이미 많은 가운데, 메디케이드 신청자 폭주로 지원자격 갱신이 중단되자 수백만 명이 치료를 받지 못했다. 팬데믹 당시인 2021년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76.4세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밝혔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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