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204] 공자의 명(明), 노자의 명(明)
공자와 노자는 사상적 차이 때문인지 같은 단어도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한다. 그 대표적인 단어가 명(明)이다. ‘논어’에서 제자 자장이 명(明)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군주의 눈 밝음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신하들 사이에 마치 수분이 스며들 듯이 임금 모르게 상대를 중상모략하는 것, 부인을 비롯한 측근 인사들의 살갗을 파고드는 애끓는 하소연, 이 두 가지가 행해지지 않는다면 그 정사는 눈 밝다[明]고 할 수 있다.”
현실주의자답게 공자는 철저하게 현실 정치 속에서 명(明)을 정의했다. 노자의 명(明)은 이와 다르다. 일종의 세계관 차원에서 명(明)은 상(常)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자에게 상(常)은 일정함인데 노자에게 상(常)이란 유와 무, 어려움과 쉬움, 길고 짧음, 높고 낮음, 앞과 뒤가 따로 구분되지 않는 통합된 상태이다. 즉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어야 명(明)이다. 그러려면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둘 간에 우열을 나누려는 것은 아니다. 둘 다 지금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눈 밝은 정치를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도움을 준다.
여당의 경우 지난번 당대표 선출 과정에서 안철수 의원, 나경원 전 의원 등을 사실상 강제로 끌어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노골적인 중상모략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대표에 뽑힌 인물이 국민 지지를 받기를 바란다는 것은 애당초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야당이 좀 나은가 하면 마찬가지로 절망적이다. 당대표가 구속을 피하자마자 모든 당직을 친명(親明) 일색으로 교체했다. 노골적으로 보이는 것만 보겠다고 만천하에 공표한 셈이다.
그렇다고 지난 1년반 대통령이 했던 인사를 보면 공자도 노자도 불명(不明)이라 할 것이다. 지도자들이 불명(不明)하면 그 피해는 두말할 것도 없이 국민들이 입는다. 이미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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