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漢詩 272수 첫 완역… 독립과 건국 운동 고초 담아
‘내일부터는 산천도 아득할 텐데(山川渺漠明朝後)/ 이 밤따라 세월이 지루하구나(歲月支離此夜前)/ 태평양 위를 두둥실 떠가니(太平洋上飄然去) 이 가운데 황천 있음을 그 누가 알랴(誰識此中有九泉).’ 이승만(1875~1965)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1920년 11월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 하와이에서 화물선을 타고 가며 비장한 심정을 읊은 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한시(漢詩) 272수가 모두 번역됐다. 허경진(70)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최근 우남이승만전집발간위원회와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이 발간 중인 ‘우남 이승만 전집’의 제9권으로 ‘한시집’을 번역해 냈다. 이승만이 한성감옥서에 갇혀 있던 1900~1903년 쓴 한시집 ‘체역집(替役集)’을 번역해 2021년 전집 제5권으로 낸 데 이어, 다른 곳에 흩어져 있던 76수를 모아 번역해 낸 것이다. 책은 번역문과 친필 사진을 함께 실었다.
이 시들은 미국 망명 시기의 신산한 생활과 감회, 대통령이 된 이후의 고뇌 등 독립운동과 건국운동 과정에서 쓴 시들이다. 6·25 전쟁 중이었던 1951년엔 ‘전쟁 그치지 않았건만 봄바람이 불어와/ 피 흘려 싸우던 들에 새잎 돋아 나오네’라며 참화를 딛고 일어날 국가의 희망을 나타냈다. 밴 플리트 장군을 치하하는 시에서는 ‘모든 나라가 붉은 불길 속이었는데/ 백 번 싸워 공을 이뤘다’라며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허경진 교수는 “한문 세대이자 젊어서 과거시험 공부를 하던 이승만은 한시가 평생 생활화된 인물이었다”며 “생활 속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모두 시로 지었다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또 장제스 대만 총통, 고 딘 디엠 남베트남 대통령, 역대 유엔군 장성들에게 시를 지어주며 한시의 외교적 효용성을 살린 마지막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이승만과 중국의 마오쩌둥, 베트남의 호찌민은 모두 한자 문화권 속에서 한시를 지은 사람들인데, 마오쩌둥과 호찌민의 한시는 자국 국민들에게 널리 읽히고 외국어로 번역되기도 했지만 이승만의 한시는 이제야 비로소 모두 우리말로 번역된 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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