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딸, 아내, 엄마로 살아낼 수 있었던 건 이 못생긴 손 덕분”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마디가 튀어나와 삐뚤어진 나의 손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젊은 시절 쓰러진 남편을 돌보느라 아팠던 내 인생에 대한 열등감처럼. 이젠 나의 손에게 잘못을 빕니다. 시인이자 딸이자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낼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손 덕분이었다고요."
신달자 시인(80)은 한 손으로 다른 손의 마디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뇌졸중 남편 52차례 입퇴원 뒤 별세… “생살 찢는 고통, 하얗게 늙고 싶었다”
우울증 치료 의사 “산에 가라” 권해… “소나무, 평화 보여주고 싶었나 봐”
최근 폐결절 떼는 수술… “쓰러질 때마다 붙잡아준 이들 감사”
신달자 시인(80)은 한 손으로 다른 손의 마디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참 못생긴 손”이라면서도 오랜 세월을 거쳐 굵어진 손마디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따뜻했다. 자신에게 들이닥친 삶을 꿋꿋이 살아낸 노시인은 긴 세월 밥과 시를 지어온 자신의 손에게 용서를 구했다.
1977년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찾아온 가장의 삶이 버거웠던 때도 있었다. 남편은 200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52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신 시인은 “남편과 딸 셋, 시어머니와 친정아버지까지 좌우로 돌아봐도 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들 속에 살았다. 그땐 살아 있음이 부담스러워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시 ‘늙음에 대하여’엔 그 시절 처절했던 심경이 담겼다. “내 나이 농익은 삼십 대에는/생살을 좍 찢는 고통 때문에/나는 마술처럼 하얗게 늙고 싶었다”
그때마다 어머니가 남긴 한마디가 그를 붙잡았다. 1978년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던 신 시인의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아픈 사위를 돌보는 딸과 마지막으로 통화하기 위해 병원 내선으로 전화를 걸어 이런 유언을 남겼다. “그래도 니는 될 끼다.”
그는 “삶이라는 계단을 더는 오르고 싶지 않을 때마다 아주 먼 저승 같은 데서 들려온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라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딸 셋을 키우고, 아픈 남편을 돌보고, 인천 요양병원에 친정아버지를 모시며 1992년 숙명여대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듬해 평택대 국문과 교수로 임용되던 날 신 시인은 어머니 묘 앞에 ‘교수증’을 바쳤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우울증이 찾아왔던 때도 그를 살린 건 말 한마디였다. 그를 치료하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아침마다 전화를 걸어 “산에 가라”고 권한 것. 그는 “처음엔 귀찮았던 전화가 나중엔 고마웠다”며 “나의 불운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는 타인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두 발을 딛고 산에 오르자 생의 의지가 느껴졌다. ‘벼랑 위의 생’은 이 무렵 강원 정선 몰운대에 올라 죽은 소나무 한 그루를 보고 쓴 시다. “벼랑 위에 살다 벼랑 위에서/죽은 소나무는/내게/자신의 위태로운 평화를 보여주고 싶었나 봐”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나 홀로 걸어 온 삶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쓰러질 때마다 나를 붙잡아준 이들이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최근 폐결절을 떼는 수술을 한 뒤로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지만, 그는 “여전히 삶이란 계단을 더 오르고 싶다”며 아이처럼 웃었다.
“앞으로 몇 권의 시집을 더 낼 수 있을까요. 단 한 권의 시집이라도 내 발로 딛고 올라가 보겠습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우영 멀티골’ 남자축구, 우즈벡 제압…7일 결승 한일전
- 우상혁, AG 2연속 은메달…‘라이벌’ 바르심 못 넘었다
- 용산 ‘청년’ 행정관 총선 출마 가시화… “청년 표심 기대” vs “당내 갈등 우려”
- [단독]선관위, 최근 6년간 수의계약이 80% 이상… “혈세 낭비” 지적
- 노벨화학상 “삼성 QLED의 아버지, 퀀텀닷 개발자 3명에게 돌아가”
- 野 “이균용 부결 될텐데 굳이”… 與 “국정 발목잡기”
- 여야, 5일 김행 인사청문회 정상 진행하기로 합의
- 다음 ‘중국 응원’ 해외 IP 2개가 2000만 번 클릭… 매크로 사용 의심
- 尹 “종전 선언 등 가짜 평화론 활개… 안보 안팎으로 위협받아”
- 국세청, 빌딩·토지 등에도 시가 기준 상속·증여세 부과… 세부담 늘어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