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게임 사회, 내 마음에 천둥이 치다
최근에 내가 잘한 일이 있다면 ‘게임사회’ 전시를 두 번 본 것이다. 게임을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다. 게임을 해본 적은 있지만 ‘플레이’는커녕 제대로 작동시키지도 못하는 데다 게임에 몽매(蒙昧)하다. 해본 적이 있는 것도 ‘슈퍼 마리오’나 ‘테트리스’ 같은 2D 그래픽 시대의 산물이라 요즘 시대에 말하는 게임과 같은 게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나도 게임을 못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계에 대한 직관력이 거의 제로에 가깝게 타고난 걸 어쩌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게임 전시를 왜 봤나? ‘미술관에서의 ESG(환경·사회·지배 구조)’라는 주제의 강연에 갔다가 듣게 된 한 큐레이터의 발표 때문이다. 지금 찾아보니 제목은 ‘현대미술의 현재성을 지속하기 위한 어떤 전략들’이다. 제목을 찾을 수 있던 것은 큐레이터의 이름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홍이지. 재미와 통찰이 있는 데다 위트까지 더해져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게임사회’는 홍이지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였고, 나는 그걸 보아야 했다.
책을 보는 건 세계를 상상하게 하고, 영화를 보는 건 세계를 지켜보게 하고, 게임을 하는 건 세계를 살아가게 만든다, 라고 전시장 벽에 적힌 말을 보면서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이 거대 산업일 뿐만 아니라 시각과 사운드 아트의 첨단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책이나 영화와 달리 ‘플레이’할 수 없기에 진입조차 할 수 없던 나지만 말이다. 좀 분했다. 게임을 한다는 것은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하는 것이어서 현대미술을 향유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말을 보고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볼 게 너무 많아서. 처음 갔을 때 세 시간을 머물렀지만 극히 일부를 봤다. 전시가 끝나는 날 폐장을 두 시간 앞둔 미술관에 다시 갔다. 처음에는 못 봤던 26분짜리 애니메이션 영상에 사로잡혔다. 다시 안 왔으면 어쨌나 싶어 아찔했던 작품은 중국 작가 루 양(Lu Yang)의 ‘물질세계의 위대한 모험-게임 영화(The Great Adventure of Material World – Game Film, 2020)’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사처럼 생긴 인간인지 인간이 아닌지 알 수 없는 존재가 고대 성전(聖殿)에 가서 절대무기로 보이는 바즈라를 획득한다. 이제 너는 물질세계의 모든 물질과 적을 정복할 수 있다고 신령스러운 목소리가 주인공에게 말하는데….
바즈라란 무엇인가? 금강저(金剛杵)다. ‘금강경’의 그 금강. 번개 혹은 다이아몬드라는 뜻이다. 저는 공이. 인도의 천둥신 인드라의 무기가 바즈라다. 토르의 망치인 묠니르와 비슷한데 바즈라가 더 우아하고 강하게 생겼다. 인드라는 바즈라로 자신의 일을 한다. 천둥을 쳐서 세상을 흔들어 놓는 게 그의 일이다. 루 양의 바즈라는 그릇된 생각을 하나하나 불러내 마음에 천둥을 내린다. 바즈라를 든 주인공이 싸우는 적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꿈’에 일격, ‘허깨비’에 일격, ‘물거품’에 일격, ‘그림자’에 일격.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라니. 이것은 ‘여몽환포영’의 세계 아닌가.
‘금강경’ 사구게의 구절이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은 꿈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 같다’는 말. 그야말로 허깨비 같아서 이해도 공감도 어려웠는데 작가가 엮어낸 새로운 형식으로 보니 달랐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고 세상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진부한 성찰도 새로운 형식과 인용을 만나니 다르게 다가왔다. ‘낯설게하기’ 효과라고 해야 할까.
꿈 같고, 환영 같고, 포말 같고, 이슬 같은 이것은 인생일 수도 있고 세계일 수도 있겠는데, 게임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과 환영과 포말과 이슬은 밀려왔다 밀려가고, 게임도 퀘스트(Quest)가 지나가면 다음 퀘스트가 오고, 우리는 순간을 살 뿐이라고. 그렇게 비유는 이 세상을 견디게 해준다. 인드라도, 바즈라도, 금강경도, 꿈도, 포말도, 이슬도 모두 비유다. 현대 세계의 운용을 지속해 나가기에 이만한 ‘전략’도 없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참신한 비유가 필요하다. 인생이나 세계가 바위 같다고 하면 숨 막혔을 것이고, 음악 같다고 하면 간지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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