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여야의 추석민심 아전인수 해석

2023. 10. 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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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 정치정책부 기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여야 지도부는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3일 명절 민심을 전했다. 이른바 '밥상머리 민심'이다. 명절에 가족끼리 모여 앉아 자연스럽게 정치 얘기를 하고, 이것이 내 이웃과 시장에 전달돼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전제로 깔린다. 그렇다면 그 민심은 보통 사람이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과 정치권의 해결 능력이 반영돼야 한다.

그러나 여야가 이날 전한 민심은 아전인수 그 자체였다. 우선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그는 이날 오후 '추석 민심'이라는 네이밍을 내세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홍 원내대표는 "이번 추석 민심은 한 마디로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한심하고 경제와 민생 위기로 국민은 한숨만 나온다는 것"이라며 운을 뗐다.

이어 윤 대통령의 장관 후보자 지명문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부적격 사유, 연구·개발 예산 삭감, 강서구청장 선거전망 등을 설명하는데 주력했다.

민심이 전하는 현 정부의 평가 역시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검찰에 의존한 야당 죽이기" "윤석열 카르텔" 등 민주당이 늘상 쓰는 표현이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독선을 막아내고, 국민을 지키는 보루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기대와 격려의 말씀을 주셨다"고 했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민심만 전달했거나, 민심을 자신들의 언어로만 해석했거나 둘 중 하나다. 실제 민심과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국민이 볼 때 공감할 수 있는 말은 "제수용 사과 한 개가 1만 원에 육박하고 우유, 휘발유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월급 빼고 다 오르고 있는데 그 월급마저 받지 못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는 것뿐이다.

국민의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발언 서두에 "경제와 민생"을 부각시킨 것 외에는 대부분이 비슷했다. 지도부는 야당의 수장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재차 거론했다. 윤재옥 원내대표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구속영장 기각이 이 대표의 여러 범죄 혐의에 대한 면죄부도 아니고, 영장 전담 판사도 위증 교사 혐의 등의 범죄 등은 소명됐다고 하니 이 대표는 본인의 신상 문제로 국회를 공전에 빠트린 데 대해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는 것이 이번 추석에 접한 민심이었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인 이태규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갔다. 이 의원은 "추석 연휴 때 만난 많은 분들은 자신의 범죄 혐의 때문에 5명이나 목숨을 끊었고, 수십 명이 구속되거나 기소됐는데도 정작 범죄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은 활개를 치는 세상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냐며 한탄하셨다"고 전했다.

추석 민심이라는 표현을 빌렸을 뿐, 평소 이 대표를 공격하는 발언과는 차이가 없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해진 이 시기에, 추석 밥상머리에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주된 관심사였을 지 의문이 든다. "추석을 앞두고 뛰어오른 과일 채소 값에 차례상이 단출해졌고 외식비에 기름값에 공공요금까지 오르지 않는 것이 없다는 푸념이 이어졌다"는 박대출 정책위의장의 짧은 한마디가 실제 민심 아닐까.

얼마 전 추석까지만 해도 가족들끼리 추석 밥상머리에서 정치 얘기를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관심사는 먹고사는 문제로 바뀌어 가는 형국이다. 최근 3년 동안 부동 간 가격이 급등하고, 대출을 일으켜 집을 사는 '영끌족'이 늘어난 탓이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7년 92.0%에서 지난해 108.1%로 올랐다.

물가 상승 역시 만만치 않다. 지난 8월 3%대로 재진입한 이래 10월 물가도 상승할 태세다. 식품 가격, 대중교통 요금 등도 줄줄이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임금 빼고 다 오른다는 상투적인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정치권의 정쟁은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여야 지도부가 추석 민심이라고 전했던 내용과는 다소 괴리가 있다. 오히려 민생은 제쳐두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에 '낙제점'을 던지고 있는 게 현재 민심이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소상공인 서모(42)씨는 "식품 물가가 오르면서 우리 가게도 음식 값을 높이다보니 손님들 발길도 뜸해졌다"며 "나 역시 수 개월에 한 번씩 반가운 친구 만날 때 나가는 외식 값이 부담스러운데, 손님들 역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말하자면 정치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신경 쓸 겨를조차 없다"고 말했다.

이것이 서민의 현실이고 민심이다. 여야 정치권에 간곡히 당부한다. 당리 당략은 이제 접고 실제 민심을 귀기울여 들으라고. saehee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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