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은 당장 노조법 개정에 나서라
[왜냐면]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 전공)
김진표 국회의장이 노조법 2, 3조 개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원청기업의 진짜 사장과 단체협상할 수 있도록 하고, 파업이나 태업에 나선 노동자들에게 영업손실의 모든 것을 전가시켜 그 생계를 핍박하던 행태를 더 이상 못하게 하는 노조법 개정은 국민의 대부분이 노동자 혹은 그 가족인 이 나라에서 무엇보다 중차대한 시대적 과업이다. 이에 국회는 소관 상임위의 의결을 거쳐 이 개정안을 본회의에 보냈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권한남용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 개정안을 본회의에 아예 상정도 하지 않고 그 입법절차를 중단시켜버린 것이다. 무수한 노동자에게 피와 눈물을 강요했던 이 법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본회의장 입구에서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본회의에서 통과시켜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니 여당과 협의해서 조정안을 마련해 오라는 것이 그의 핑계다. 하지만 이런 주문은 문자 그대로 허사에 불과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개정안을 줄곧 반대하면서 한 치의 양보도 않겠다는 뜻을 공언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까지 노조를 공격하며 노조와 국민을 이간하기에 여념 없었다. 조정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설령 만들어도 국민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무의미한 것이 될 터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걱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거부권은 대통령의 몫이지만 입법은 국회의 몫이다. 국회의장은 300명 국회의원이 모인 입법부를 대표한다. 그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법률안이라면 국회의장은 그것을 대통령이 받아들이게끔 노력해야 한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무서워 입법 절차를 중단시킬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고 국회의원들을 대표하는 입법부의 수장으로서 다른 생각을 가진 대통령을 설득하고 압박해 국회의 입법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고집스레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그 책임을 대통령이 통감할 수 있도록 국민에 호소하고 재의결이나 재입법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할 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제대로 구현되는 입헌 민주국가의 실질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원래 의회제도의 출발점은 국왕이 원하지 않는 법률을 만들어 국민의 뜻을 받들게 함에 있다. 입법권이야말로 국회가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임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대통령이 싫어하는 법률이라 해서 국회가 입법하지 않는다면 그 국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국회의장이 거부권 행사를 걱정하며 노조법 개정안의 상정을 거부하는 것은 의회주의 자체를 훼손하는 일인 것이다.
물론 시장주의에 친숙한 국회의장이 개인적으로 이 개정안을 반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행동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국회법상 국회의장은 국회의원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국회의원과 같은 위치에서 그들의 회의 진행을 정리하고 입법사무를 조정하는 국회 관리자다. 의사일정을 교섭단체 대표들과 협의해 정해온 관행을 핑계 삼아 이미 다수 의사가 확인된 의안을 상정하지 않는 것은 의장권의 남용이다. 정치적으로 봐도 그러하다. 그는 국회의 원로여야 하되 ‘꼰대’여서는 아니 된다. 자신의 지도력으로 국회의원들을 이끄는 사람이어야지, 자신의 이념이나 정치지향에 집착해 국회의 다수 의사에 딴죽을 거는 사람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국회법이 국회의장에게 관리형의 직무를 부과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정부의 뜻에 맞춰 혹은 그에 기대어 국회를 ‘관리’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 국회에는 노조법 개정안을 비롯해 방송법 개정안, 생명안전보호법 제정안, 이태원참사법 제정안, 특검법안 등 너무도 중요한 법안들이 계류돼 있다. 이들은 너무도 간절한 국민의 여망을 담아냈지만, 하나같이 현 정부가 대립각을 세워 반대하면서 협상과 타협을 거부하고 있는 법안들이다. 그 팽팽한 대립이 맞닿은 지점에 김진표 국회의장이 자리한다. 유사한 상황에서 지난날 신익희 국회의장은 국회를 대표해 당당하게 정부에 맞서 싸웠다. 대통령의 독주에 정치가 사라져버린 이 시대에 국회의장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어야 할지 김진표 국회의장은 제대로 성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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