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님, ‘파맛 첵스’도 좌편향 세력의 음모 아니었을까요?
[뉴스룸에서]
[뉴스룸에서] 정유경 | 뉴스서비스부장
일본 대표 포털인 야후재팬에서 독도는 누구 땅인지 ‘응원’을 클릭해달라고 요청했다면 어땠을까. 그것도 횟수 제한 없이 응모하게 했다면? 시시각각 높아지는 상대 쪽 숫자는 승부욕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실제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5년 국정홍보처가 영문누리집에서 독도 명칭을 묻는 설문조사를 시행했다가 일본 누리꾼들의 참여율이 치솟았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 누리꾼들이 반격에 나서며 ‘독도’가 압승했다. 한-일 누리꾼들의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양상이 되자 국정홍보처는 설문을 중단했다.
포털 네이버의 스포츠섹션엔 승리팀을 예측하는 ‘응원팀 터치’ 기능이 있다. 모바일 로그인 뒤 원하는 팀 버튼을 연타하면 숫자가 실시간으로 올라간다. “10만 응원을 달성했어요” 같은 팡파르도 터진다. 올해 프로야구 개막전 이후 140경기가 치러질 때까지 약 3주 동안 ‘응원팀 터치’ 누적 건수는 약 8억건(5월4일 언론 보도)이었다고 하니, 경기당 평균 571만건의 클릭이 이뤄진 셈이다. 이런 참여형 마케팅은 사용자 로그인을 유도하고 플랫폼에 더 머무르게끔 한다.
참여형 마케팅 실패(?)로 유명한 사례도 있다. ‘파맛 첵스’ 사건이다. 2004년 농심켈로그는 시리얼 브랜드 중 하나인 첵스초코 출시 홍보를 위해 ‘첵스초코나라 대통령 선거 이벤트’를 열고, 초콜릿맛과 파맛 가운데 우승한 후보를 출시하겠다고 했다. 정답 외엔 엉뚱한 답을 불러주고 사실상 거저 맞히라는 의도였다. 하지만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라)식 이벤트에 반감을 느낀 누리꾼들이 파맛에 몰표를 던지면서 하마터면 파맛이 이길 뻔한 사태가 벌어졌다. 농심 쪽은 보안업체를 동원해 중복 투표 등을 가려내고 무효표를 제외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2012년 일본켈로그도 초콜릿맛과 고추냉이맛 시리얼 가운데 신제품을 고르는 이벤트를 열었다가 비슷한 사태를 겪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중간집계 당시 초콜릿맛은 6653표, 고추냉이맛은 34만7375표를 얻었다. 업체는 뒤늦게 복수 아이피(IP) 차단에 이어 1개 브라우저에서만 투표할 수 있게 하는 등 제한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이렇듯 설문·응원 형태의 참여형 이벤트는 성공적으로 설계되었을 경우 화제성 견인엔 효과적이지만, 자칫 온라인 대결을 부추기거나 누리꾼들의 전략적 반대 몰표에 휘말리기 쉽다. 십수년간 경험이 쌓이면서 △로그인 요청 △복수 응답 제한 △계정 생성 제한 △복수 아이피 차단 등 기업들의 기술적 차단 조치들도 발달했고, 누리꾼들도 무기명 투표 결과를 무턱대고 믿지 않게 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비롯한 아이티(IT) 플랫폼은 사용자가 찾아와 오랫동안 머물러야 돈을 벌 수 있다. “우리가 화면을 더 많이 들여다볼수록 그들이 버는 돈도 늘어난다”(‘도둑맞은 집중력’). 요즘 초등학생 사이에선 친구들 카카오톡 프로필의 조회수를 올려주는 것이 인기다. 프로필에 방문객 수를 세어 주는 ‘스티커’를 붙인 다음 방문자가 해당 버튼을 연타하면 숫자가 올라간다. 중복 집계가 가능하니, 사실상 무의미한 숫자다. 하지만 아이들은 플랫폼의 설계대로 프로필에 더 오래 머무른다.
최근 포털 다음이 아시안게임 페이지에서 선보인 ‘로그인이 필요 없는 응원 클릭’이 문제되면서, 한덕수 총리까지 나서서 ‘여론 왜곡조작 방지 대책 티에프’를 꾸리라고 지시하는 소동이 일었다. 지난 1일 한-중 축구 8강전 당시 우리나라가 중국에 2-0 승리를 거뒀지만, 경기 종료 뒤 심야시간대에 중국 응원 클릭이 91%에 이르는 등 비정상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화들짝 놀란 다음은 자체 조사 결과 “2개의 아이피가 해외 아이피 클릭의 99.8%인 1989만건을 차지했다”며 업무방해 행위로 간주해 수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를 두고 “(포털에) 좌편향 세력들과 중국 특정 세력들이 개입하는 것이 일부 드러났다”며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도 안심할 수 없다”고 ‘정치적 편향’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로그인이 필수인 다음 댓글 응원창에서는 한국팀 응원 비중이 99%였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그인 조치만으로도 예방할 수 있었던 해프닝이란 이야기다.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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