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업대출 출혈경쟁, 毒 되지 않으려면

“대출은 곧 은행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가계대출 확대는 한계가 있으니 이제 기업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습니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
최근 은행이 기업대출에 눈을 돌리고 있다. 그동안 은행의 수익성을 책임지던 가계대출이 정부의 관리 대상에 오르자 대신 기업대출을 확대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기업대출을 성장동력으로 꼽은 은행은 기업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다소 과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 은행은 기업대출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며 다른 은행으로부터 “기업대출 규모를 키우려고 이익이 거의 남지 않는 대출까지 하고 있다”라며 출혈 경쟁에 대한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질세라 또 다른 은행은 기업대출 점유율 1위라는 목표를 내걸고 기업금융 전문 인력에 대해 기본급여에 최대 300%까지 성과보상을 하겠다라며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기업부채는 올해 6월 말 2705조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최근 1년 사이 130조원 가까이 늘었다. 기업대출에 주력하는 은행과 자금이 필요한 기업의 상황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은 9월에만 8조8416억원 증가해 잔액이 756조원까지 늘어났다.
빠르게 증가하는 기업대출은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은행은 기업대출 확대 전략에 “문제없다”라며 부실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은행의 기업대출 확대 양상은 건전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기업대출의 상당 부분이 코로나19 사태 당시 상환이 유예된 형태다. 새롭게 기업대출을 하더라도 기업이 대출을 활용해 투자 확대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대신 비상용 현금을 확보하거나 기존 빚을 상환하는 데 쓰고 있다. 대출로 연명하는 부실기업도 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비금융 기업 3만5000여개 중 부실기업 부채가 기업 부문 총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8년 5.3%에서 지난해 7.8%로 늘어났다.
경기 전망도 밝지 않다. 기업대출의 건전성은 경기에 달려 있다. 하지만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의 10월 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90.6을 기록했다. BSI가 기준치인 100을 밑돈다는 것은 기업이 경기를 부정적으로 전망한다는 의미다. BSI 전망치는 19개월 연속 기준치를 하회하고 있다.
은행은 기업대출 확대 시 부실 가능성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은행의 관리 부실은 위기가 드러나기 전에는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경기가 수그러들 때 은행의 기업대출 부실 위험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금처럼 은행권이 ‘저(低)마진’ 기업대출을 경쟁적으로 확대하는 것보다 현장심사 강화 등을 통해 건전한 대출 자산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도 필요하다. 미국의 경제학자 올리버 M.W. 스프라그는 “가계, 기업, 은행은 한 줄로 쌓은 벽돌과 매우 비슷해서 하나가 무너지면 나머지 전부가 위험해진다”라고 말했다. 기업부채 역시 가계부채만큼이나 은행의 건전성에 큰 영향을 준다. 정부는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50년 주택담보대출’ 등 특정 상품을 거론하며 부채 증가 요인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대출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 정치권도 대출이라는 산소 호흡기를 낀 한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문제에 대한 논의를 멈춘 상태다. 기업은 대출이 아니면 도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 기업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부채 축소는 상당히 힘든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은 고통스럽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 체질을 건강하게 만들며 지속적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라고 했다. 은행과 정부, 정치권은 장기적인 성장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최근 과도하게 급증하고 있는 기업부채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르포] 금형부터 양산까지 ‘원스톱’... 유아이엘, 전장·전자담배 신사업으로 외형 확장
- [르포] “강남 수준입니다”… 길음뉴타운 국평 전세값 11억원
- 공장 짓고 兆단위 투자… ‘유럽 인사이더 전략’으로 승부수 던지는 K방산
- 연예계 탈세 논란 ‘1인 기획사’, 박신혜도 과거 6년간 운영
- “기증받은 사체 피부를 800억 미용 주사로”...리투오 키운 엘앤씨바이오 ‘규제 공백’ 논란
- [MWC 2026] 홍범식 LG유플러스 사장, 삼성 전시관서 “갤럭시 버즈4 딸 사주고 싶어”
- “7억 더 내야”… 1기 신도시 재건축 분담금 포비아 확산
- “아메리칸 드림 끝났다”… 총기 사고·고물가에 ‘탈미국’ 사상 최대
- 日 떠난 중국인, 韓서 지갑 연다… 몰려드는 관광객에 노 젓는 백화점
- [동네톡톡] 통합 속도 낸 광주·전남… ‘알짜 공공기관’ 몰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