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댓글’과 다른데도 “여론조작”···트집 잡아 포털 때리는 정부·여당
정부·여당이 또다시 ‘포털 때려잡기’에 나섰다. 이번엔 지난 1일 치러진 한국과 중국 간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8강전이 끝난 뒤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중국팀에 대한 ‘클릭 응원’ 수가 한국팀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을 문제 삼았다. 로그인하지 않고 횟수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클릭 응원은 로그인해 제한적으로 달 수 있는 기사 댓글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여권은 중국과 북한이 선거 개입, 여론 조작을 벌일 수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번 사건과 무관한 네이버까지 싸잡아 때리기 대상에 올랐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권의 포털 길들이기가 노골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4일 카카오에 따르면 지난 1일 치러진 축구 한중전 클릭 응원은 약 3130만건이었다. 이 중 중국이 93.2%(2919만건), 한국이 6.8%(211만건)였다. 클릭 응원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된 IP는 5591개인데 국내 IP가 95%를 차지했다. 하지만 클릭 응원 수에서 해외 IP가 차지한 비중은 86.9%에 달했다.
카카오 측은 네덜란드(79.4%)·일본(20.6%) 등 2개의 IP가 해외 IP 클릭의 99.8%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 2개 IP의 클릭은 경기 다음 날인 2일 오전 0시30분 이후 이뤄졌다. 해외 유입 IP는 국내 등에서 VPN(가상사설망)을 활용해 우회접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은 2019년부터 중국으로부터의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카카오 측은 “한중전 클릭 응원수 이상 현상은 이용자가 적은 심야 시간대에 2개 IP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만들어낸 이례적인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현상은 클릭 응원이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횟수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기에 가능했다. 카카오에 따르면 이전에도 한국 상대팀에 대한 클릭 응원 수가 더 많았던 경우는 종종 있었다. 실제로 로그인해야 달 수 있는 응원 댓글에서는 한중전 당시 92.2%가 ‘한국’을 응원국으로 선택했다. 다음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가운데 로그인 없이 댓글·답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를 수 있는 서비스는 클릭 응원을 포함해 2개에 불과하다. 다음은 지난 2일 클릭 응원 서비스를 중단했다.
다음은 지난 6월 기사 댓글창을 없애고 실시간 채팅(타임톡)을 운용하고 있다. 타임톡은 기사 게재 후 24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사라진다. 하루에 달 수 있는 댓글 수도 ID당 50개로 제한한다. 네이버도 24시간 내 작성할 수 있는 기사 댓글을 20개, 답글을 40개, 공감·비공감을 50개로 제한하고 있다. 또한 한번 댓글·답글을 달거나 공감·비공감을 누르면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참여가 가능하다. 클릭 응원처럼 매크로를 활용한 조작이 불가능한 것이다. 네이버는 로그인을 해야 응원이 가능해 한중전 때도 클릭 응원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번 중국에 대한 클릭 응원이 조직적인 조작이란 증거는 없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중국에 대한 클릭 응원 수가 경기 중이 아닌 경기 종료 후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것 등을 근거로 이번 일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기보다는 국내 몇몇 젊은층이 벌인 해프닝일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실제로 한 IT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자신이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이 같은 ‘장난’을 쳤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대통령실·국무총리까지 나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연관지어 포털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선거기간에 민감한 정치뉴스에 이 조작행위가 동일하게 자행될 수 있는데도 네이버, 다음만 수수방관 중”이라며 검찰, 경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나서 “여론 조작 세력”을 엄단할 것을 촉구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월 자신이 대표발의한 댓글 국적 표기 법안의 정기국회 처리와 국가정보원의 점검 등을 촉구하며 “다음이 여론 조작의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이달 국정감사에서 포털 관계자들에 대한 증인 채택을 추진 중이다. 국민의힘은 중국이나 북한이 개입한 사실이 전혀 밝혀진 바 없는데도 ‘차이나 게이트’란 용어를 써가며 “중국과 북한의 온라인 여론 조작 시도가 가시화된 것이 아니냐”고까지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의 포털 때려잡기 시도는 계속돼 왔다. 최근에는 뉴스타파의 ‘김만배 조작 인터뷰 의혹’을 계기로 포털이 ‘가짜뉴스 유통의 숙주’라며 직접 책임이 없는 포털을 때렸다. 국민의힘이 구성·운영 방식을 집중 공격한 이후 포털 뉴스 제휴 심사를 담당하는 자율기구인 뉴스제휴평가위원회가 지난 4월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국민의힘의 문제 제기에 방통위는 포털 알고리즘 편향성 실태 점검을 진행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가짜뉴스 퇴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포털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 등 개선책을 논의 중이다. 국민의힘은 포털 기사 배열 방식과 알고리즘, 책임자를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 포털 기사 배열을 심의하는 별도 위원회를 두도록 하는 법안, 포털을 언론으로 규정하는 법안 등 포털 뉴스 서비스 규제 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정치권 압박에 포털 기사를 통한 여론 조작 가능성은 이미 사실상 차단됐다”며 “총선을 앞두고 포털을 길들이려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고 말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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