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오펜하이머'와 '반중력'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3. 10. 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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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년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오후 차담을 나누는 로버트 오펜하이머(왼쪽)와 폴 디랙(가운데), 에이브라함 페이스(오른쪽). 1928년 디랙은 디랙방정식을 고안해 반물질로 가는 길을 가리켰고 1930년 오펜하이머는 디랙방정식을 해석한 논문에서 반물질의 완전한 비전을 제시했다. 위키피디아 제공

지난달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전기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원작으로 한 ‘오펜하이머’다.

외모만 보면 전형적인 이론물리학자로 보이는 오펜하이머가 어떻게 원자폭탄 개발을 목표로 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어 단기간에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늘 궁금했는데 영화를 보니 조직력과 추진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특히 박학다식함을 무기로 각 분야 전문가들 사이의 이견을 조율하고 다독이며 연구를 끌고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반물질의 완전한 비전 제시

1904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오펜하이머는 하버드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당시 막 정립되던 양자역학을 공부하고 1929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 부임해 미국에 양자역학을 소개한 인물이다.

그러다 1942년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게 되면서 일찌감치 본인의 연구 활동은 접었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1947년부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에 부임해 과학행정가의 삶을 이어갔다. 

오펜하이머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나 폴 디랙 등 양자역학을 만든 비슷한 나이대의 이론물리학자들과 맞먹는 천재성을 지녔음에도 이들에 버금가는 업적을 내놓지는 못했다. 아이디어는 뛰어남에도 끝까지 파고 들어가는 끈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버클리대 교수 시절에도 여기저기 건드리는 분야는 많았지만 대부분 일회성에 그쳤다.

그의 천재성과 기존 지식에 얽매이지 않는 기발함이 돋보이는 예가 바로 디랙방정식을 보고 떠올린 양전자 아이디어다. 1928년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폴 디랙은 뛰어난 수학 감각으로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결합한 디랙방정식을 만들어냈는데 그 결론이 뜻밖이었다. 원자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의 에너지가 양의 값은 물론 음의 값도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디랙방정식 해의 물리적 의미를 고민하던 디랙은 진공을 재해석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진공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음의 에너지인 전자로 꽉 채워진 상태라고 가정했다. 이때 외부에서 감마선 같은 에너지를 공급하면 양의 에너지가 된 전자가 튀어나오면서 구멍이 생긴다. 구멍은 음의 에너지를 지닌 전자의 부재로서 이는 양의 에너지를 지닌 양전하 입자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결국 감마선 에너지가 둘 다 양의 에너지인 전자와 양전하 입자 쌍으로 바뀐 셈이다.

디랙방정식 자체는 이론물리학자 사이에 엄청난 찬사를 받았음에도 음의 에너지에 대한 해석은 조롱의 대상이었고 결국 디랙은 이듬해 출판한 논문에서 이 양전하 입자가 양성자일지 모른다고 한발 물러섰다. 실제 그렇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논쟁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버클리에서 이 논문을 읽은 오펜하이머는 즉각 문제점을 파악하고 1930년 ‘전자와 양성자 이론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전자의 쌍이 되는 양전하 입자가 양성자라면 수소 원소는 순간적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며(감마선 쌍으로 소멸할 것이므로) 전자와 질량이 같은 미지의 입자가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랙은 즉시 오펜하이머가 비판하는 바의 중요성을 알아차리고 이듬해 발표한 논문에서 “실험물리학에서 아직 밝혀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입자로 전자와 동일한 질량과 전하량(절대값)을 지녀 반전자(anti-electron)라고 부를 수 있다”고 썼다. 이어서 “이 대칭성이 정말 자연의 근본 법칙이라면 어떤 종류의 입자라도 전하가 반대인 짝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반물질(antimatter) 이론이 정립되고 1년 뒤 미국의 실험물리학자 칼 앤더슨은 우주선(cosmic ray)의 안개상자 궤적을 분석해 반전자를 발견했고 이를 보고한 논문의 학술지 편집자가 반전자 대신 양전자(positron)란 용어를 만들어 썼다.

●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차이 없어

그렇다면 반물질에 미치는 중력의 영향은 어떨까. 중력은 질량과 관련한 힘이고 반물질은 대응하는 물질과 같은 질량이므로 영향도 같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도 질량이 같은 모든 물체는 내부 구조와 관계없이 무게가 같아야 한다. 반양성자와 양전자로 이뤄진 반원자라도 원자와 정확히 같은 중력가속도가 작용해야만 한다.

그러나 ‘추한 진실이 아름다운 이론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몇몇 물리학자들은 반물질이 중력을 다르게 느낄 가능성을 제기했다. 우주론의 표준모형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과 에너지는 우주의 물질/에너지의 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실체를 모르는 암흑물질(27%)과 암흑에너지(68%)다.

따라서 반물질과 물질이 척력으로서의 중력인 반중력을 띤다면 암흑에너지의 일부를 설명할 수도 있다. 한편 같은 인력이라도 중력가속도가 다르게 작용한다면 빅뱅 직후 엄청난 에너지가 같은 양의 물질과 반물질로 바뀌었음에도 오늘날 물질로 이뤄진 세계가 된 비대칭성을 설명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스위스 제네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있는장비인 알파 실험 설비로 반수소 생성 및 물리 특성을 실험한다. CERN 제공

● 아래로 떨어지는 반수소

양전자는 물론 반양성자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지만 전하를 띤 반입자는 전자기력에 너무 민감해 물리적 특성을 연구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이 상호작용해 전기적 중성이 된 반수소 원자를 만들어야 한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1990년대 반수소 프로젝트를 시작해 2002년 최초로 반수소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아테나 실험) 2010년 반수소가 1000초 동안 소멸되지 않고 유지하는 방법을 개발했다(알파 실험). 영하 266도의 극저온과 진공 환경에서 전기장과 자기장을 교묘히 배치한 용기 안에 반수소를 공중부양시켰다(물질인 벽에 닿으면 소멸하므로).

그 뒤 반수소의 물리적 특성을 측정하는 실험을 진행했고 2016년 반수소의 빛 흡수 스펙트럼 패턴이 수소와 같다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 이 역시 예상한 결과였지만 실험으로 증명해 불확실성을 없앴다는 게 중요하다.

2018년 연구자들은 미미한 힘인 중력의 영향을 측정하기 위한 정교한 장치를 만드는 실험을 진행했다. 몸무게가 수십㎏인 우리에게는 중력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만, 물체의 질량이 작아질수록 영향도 줄어든다. 하물며 질량이 10의 –27승㎏ 단위인 반수소 원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반수소에 미치는 중력의 영향을 측정하는 장치인 알파-g의 모식도로 통로 가운데 포획된 반수소(antihydrogen)가 위와 아래로 빠져나오는 개수를 검출한다. 실험 결과 중력만 있을 때 반수소의 약 72%가 아래로 떨어져 수소와 마찬가지로 중력이 인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네이처 제공

연구자들은 통로가 수직인 용기 안에 양전자와 반양성자로 반수소를 만든 뒤 운동에너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절대영도보다 불과 0.5도 높은 영하 272.6도까지 온도를 낮췄다. 그리고 전자기장을 서서히 줄여 반수소에게 자유를 줬다.

만일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운동량의 방향에 따라 통로 위나 아래로 빠져나가는 반수소 개수가 비슷할 것이다. 참고로 통로를 벗어난 반수소는 물질로 된 벽에 닿아 소멸하면서 검출돼 존재가 확인된다.

만일 물질(지구)의 질량이 척력인 반중력으로 작용한다면 반수소의 운동량 방향이 위쪽으로 치우치며 통로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반수소가 더 많을 것이다. 반대로 인력인 중력으로 작용한다면 운동량의 방향이 아래쪽으로 치우치며 통로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반수소가 더 많을 것이다. 

실제 실험 결과 용기 내 반수소의 72%가 통로 아래쪽으로 빠져나갔고 28%가 위쪽으로 빠져나갔다. 반수소 역시 수소처럼 중력이 인력으로 작용했다는 말이다. 한편 반수소가 중력을 인력으로 느낀다고 할 때 시뮬레이션 결과는 약 80% 정도가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는 걸로 나와 약간 차이를 보였다.

다만 실험 조건이 아주 정밀하지 않아 정말 차이가 있는 것인지 단순히 실험 오차인지는 아직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 아무튼 이번 실험으로 반물질과 물질 사이에 반중력이 작용해 서로 밀쳐낸다는 가설은 폐기됐다. 

1925년 21세의 오펜하이머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 케임브리지 캐번디시연구소의 패트릭 블래킷 교수를 지도교수로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실험에 서툴렀고 향수병에 시달리며 정신이 이상해져 사과에 독을 묻혀 블래킷의 책상에 올려두는 충동 범죄를 저질렀다.

다행히 블랫킷은 사과를 먹지 않았지만, 살인 미수 사건은 대학 당국에 알려졌다. 그러나 마침 그곳에 머물렀던 부유한 아버지의 로비 덕분에 형사 처벌과 퇴학을 면했다. 영화 ‘오펜하이머’도 이 장면을 각색해 그리고 있다.

이듬해 양자역학 논문을 읽고 흥미를 느낀 오펜하이머는 여름에 케임브리지에서 학위를 받게 될 두 살 연상의 디랙을 만났다. 그는 디랙의 작업에 대해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면서도 “나는 그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오펜하이머는 실험과 결별하기로 하고 양자역학의 산실인 독일 괴팅겐의 막스 보른 교수팀으로 옮겨 이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처럼 실험에 서툴렀던 오펜하이머가 수많은 실험물리학자와 공학자들을 지휘하며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반수소를 만들고 물리 특성을 연구하는 알파 실험에는 현재 7개국 14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만일 오펜하이머가 반수소 프로젝트를 맡았더라도 거뜬히 해내지 않았을까.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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