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상비약 편의점 판매반대, 약사회 이기주의

2023. 10. 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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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진열돼 있는 안전상비의약품들 [뉴시스]

프랑스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Bastiat)의 ‘양초업자의 탄원서’(1845년)는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초 생산업자에게 태양은 ‘넘사벽’의 너무나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태양을 없앨 수 없으니 “낮에도 의무적으로 건물의 모든 창에 두꺼운 커튼을 치는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는 것이다. ‘시장에서 내 경쟁자를 몰아내 달라’는 청원인 것이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도 따지고 보면 시장에서 대기업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규제해 달라는 것이다. 전통시장 보호를 위한 대형 마트 영업 규제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안전상비약 편의점 판매 확대를 반대하는 약사들의 집단 요구도 그 ‘본질’은 자신의 집단이익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혁신은 기존 질서의 파괴를 의미하기에 관련 당사자 간 ‘이해 충돌’은 불가피하다. 예컨대 통조림의 등장은 현장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에 심대한 매출 타격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식당 종사자들이 힘을 합친다 해도 통조림의 생산과 유통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히는 기술 발전이기 때문이다.

‘안전상비약 약국 외 판매제도’는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 및 새벽시간에 안전상비약이 필요한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의약품의 성분, 부작용, 함량, 제형, 인지도 등을 고려해 ‘20개 이내의 품목’을 편의점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환자친화적 제도다.

하지만 안전상비약 품목은 2012년 제도 도입 이후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재평가·재심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허가 품목도 13개에서 전혀 확대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가 2017년 3월부터 2018년 8월까지 6차에 걸쳐 개최됐지만 품목 점검 및 재조정 결론을 내지 못하고 공전했기 때문이다.

약사회의 방어논리는 ‘직역이기주의의 발로’다. ‘복약지도가 불가능해 약물 오남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약사회는 약물 오남용 우려를 지나치게 오남용하고 있다.

안전상비의약품은 전문의약품 및 일반의약품과 달리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복지부의 엄격한 심사 및 검증에 기초해 국민의 ‘자기투약’이 승인된 품목이기에 부작용의 예방이나 처치 등에 대해 국민이 스스로 적절하게 판단할 수 있는 품목이다.

따라서 약사회가 약물 오남용의 우려로 편의점 상비약 판매 확대를 반대하는 것은 억지스럽다. 위험 대비 편익이 확실하고 크다면 오리려 적극적인 행정과 관리 체계로 뒷받침해 허용 품목을 원안대로 20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약사회는 전체 인구 대비 약국 숫자가 충분해 약국 접근성이 커 안전상비약을 늘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국민 2200명당 약국 1개소가 운영되고 있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술 평균’은 의미가 없다. 지역적·시간적 측면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집 건너 약국이 있더라도 산간벽지는 여전히 ‘무약촌(無藥村)’이며, 심야시간대에는 약을 구할 수 없다. 전국 곳곳에 자리 잡은 5만여개의 편의점 점포를 활용해 이러한 약품 공백을 메울 수 있다면 ‘약품 전달의 인프라’로 활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악사회는 편의점 다수에서 아무 교육도 받지 않은 종사자가 판매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경청해야 할 비판이지만 그 이유로 편의점 판매를 불허할 수는 없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비약의 포장에 복약지도를 더욱 크고 쉽게 표현하면 된다. ‘1인 다량의 구매’가 우려되면 동일 점포 내에서 ‘초과·중복 구매’를 막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된다. 편의점을 옮겨다니면서 약을 매입하면 막을 길은 없다. 주지하다시피 편의점의 단가는 비싸다. 비싼 것을 중복 구매하는 바보는 없다.

편의점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기간에 ‘자가진단키트와 마스크 판매를 통해 공공플랫폼으로의 기능을 수행했다. 자가진단키트 판매는 내복약 판매 이상의 자율권을 부여한 것이다. 자기진단키드 구매를 허용하면서 안전상비약 구매에 시비를 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요조사에서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약을 구입할 수 있어 이전보다 편리하다’고 응답했으며, 구입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공휴일, 심야시간 급하게 약이 필요해서’를 꼽았다.

약사의 전문성은 혁신의약품을 개발하는 데 발휘된다. 약국외 안전상비약을 파는 데에 약사의 전문성을 요구한다면 과유불급이 아닐 수 없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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