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받은 안산, 징계 규정 없는 프로축구연맹. 이대로는 추가 비리 못막는다[축구판 블랙 커넥션⑨]

김세훈 기자 2023. 10. 3. 22: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선수 영입과 관련해 지도자, 구단 고위층이 사실상 담합한 ‘조직적 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산 프로축구단 전 감독, 전 직원을 프로축구연맹이 징계할 수 있을까. 사실상 할 수 없다. 굳이 해도 솜방망이 처벌만 가능하다.

연맹 상벌 규정에 있는 ‘프로 계약 위반’ 양형 기준에는 선수 영입과 관련해 금품을 ‘받은’ 감독·직원에 대한 징계 규정이 아예 없다. 구단이 금품을 ‘제공한’ 경우에는 양형기준이 있지만 금품을 ‘수수한’ 데 대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즉, 선수를 영입해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아도 연맹은 구단과 해당자를 처벌할 수 없다. ‘범죄 및 기타 반사회적·비윤리적 행위로 물의를 야기한 경우’에 대한 양형 기준은 있지만 이는 살인, 미성년자 약취, 특수강간, 강도 등에만 해당한다. 승부조작, 심판 권위 부정, 폭력, 관중에 대한 비신사적 행위, 경기 규정 위반, 반도핑(약물검사) 위반, 종교적 차별행위·정치적 언동·인종차별적 언동 등에 대한 양형기준으로는 안산을 처벌할 수 없다.

아무 데나 갖다 붙일 수 있는 ‘K리그 비방, 명예 실추 행위’에 대한 양형기준도 약하기 이를 데 없다. 팀에 대해서는 500만원 이상 제재금, 개인에 대해서는 6개월 이상 자격정지 및 출장정지, 5~10경기 출장정지, 500만원 이상 제재금이 전부다. 억지로 이 기준을 적용한다고 해도 경징계만 내릴 수 있다.

수정이 불가피한 규정은 또 있다. ‘기타 클럽 운영자 등 임원 및 구단 직원의 비위 사실에 대한 징계는 구단에 대한 징계로 갈음한다’는 규정이다. 비위를 저지른 임직원은 구단만 처벌할 수 있고 연맹은 손을 안대겠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연맹이 구단을 강하게 징계할 수 있는 양형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구단에는 솜방망이 징계만 내리고 개인 비리는 구단이 알아서하라는 식이다. 프로축구 전체를 관리해야 하는 책임을 연맹이 스스로 저버린 꼴이다. 프로축구계 관계자는 “축구단 양적 팽창만 추구하면서 구단의 엄청난 잘못까지도 덮어주겠다는 것인가”라며 “승부조작, 심판매수, 스카우트 비리, 불법 토토 등이 계속 발생하는 데는 연맹의 제식구 감싸기와 솜방이 처벌, 면피식 행정이 한몫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맹은 사법처리 중인 사건을 접할 때마다 “사법적최종 판결이 나와야 연맹도 처벌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얼핏 듣으면 맞는 말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책임 회피성 발언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재판이 끝나려면 3년 안팎이 걸린다. 연맹이 법적 최종 판결 후 징계를 내린다면 징계는 축구계 생명이 이미 끝난 개인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만일 구단에 때늦은 징계를 내린다면 구단은 수긍하겠나. “과거 집행부 과오로 현 구단을 처벌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맞설 게 뻔하다. 법적 최종 판결 후 연맹 징계는 구단에 면죄부를 주고 연맹은 잘 대처한 것처럼 포장하는 전시행정일 뿐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선수 영입 등에 대해 FIFA 규정을 위반할 경우, 구단에게도 신입 선수 계약금지 등 무거운 징계를 내린다. 유럽축구도 재정 건전화 위반, 승부조작, 스카우트 비리 등이 발생하면 강등, 승점 삭감, 대회 출전금지, 신입 선수 영입 금지, 출전 중인 대회 중도 탈락 등 강력한 징계를 부과한다. 축구계 관계자는 “안산 사태가 몇 달간 벌어져도 연맹이 취한 조치가 거의 없다”며 “지금이라도 연맹은 안산 구단, 기소된 지도자·직원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고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때 적용할 수 있는 강력한 양형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