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투자 필요’ R&D 사업마저…예산 최대 80% 깎았다

이정호 기자 2023. 10. 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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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일 예측·조기경보시스템 구축 등 국민 안전과 연관 연구비 줄 삭감
대기·인재활용 등 과기정통부 선정 ‘S등급’ 13개 사업 2000억 줄어

내년 해저지진 대비 예산이 80%나 깎여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기후변화 대응처럼 국민 생활과 직결된 다른 연구·개발(R&D) 예산도 크게 줄었다. R&D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우선 투자’가 필요하다는 평가까지 받은 사업들인데도 예산 삭감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3일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기정통부에서 제출받은 ‘2024년도 과기정통부 R&D 투자우선순위 의견’ 자료 등을 보면 ‘실시간 해저 재해감시 기술 개발 사업’의 경우 올해는 40억원이 지원됐지만, 내년에는 무려 80%가 삭감된 8억원만 편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업은 해저지진 등 바닷속에서 일어나는 재해 가능성을 예측하고, 조기경보시스템 시범 구축을 위한 기반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해저지진은 지진해일(쓰나미)을 일으키는 일이 많다. 지진해일 발생이 우려되거나 확인되면 해안가 주민들에 대한 신속한 대피 명령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련 기술 확보는 국민 안전을 위해 중요하다.

게다가 해저는 세계 통신케이블이 지나는 공간이다. 이 때문에 지진 등으로 손상될 경우 통신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동해 등 한국 주변 바다의 해저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본다. 이 때문에 과학적인 조사를 위한 적극적인 R&D가 필요한데도 도리어 예산이 대폭 깎인 것이다.

‘해양·육상·대기 탄소 순환 시스템 연구’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올해는 64억원이 지원됐지만, 내년에는 이보다 33% 줄어든 42억원만 배정됐다. 이 사업은 해양과 육상, 대기를 순환하는 이산화탄소의 움직임을 규명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의 기후변화 예측을 위한 연구 기반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공계 인재 육성과 활용을 위해 지속적으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취지의 ‘인재활용 확산지원 사업’의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39%(308억원) 줄었다. 정보통신방송 혁신인재 양성 사업도 17%(229억원)가 삭감됐다.

특히 이렇게 줄줄이 예산이 깎인 사업들은 과기정통부가 내년 R&D 사업의 투자우선순위를 평가해 최고 등급인 ‘S등급’으로 꼽은 것들이어서 논란을 부채질한다.

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R&D 사업의 중요성을 총 4단계(S, A, B, C) 등급으로 분류해 ‘2024년도 과기정통부 R&D 투자우선순위 의견’ 자료를 작성한 뒤 기획재정부에 지난해 10월 제출했다. 이 자료는 기재부가 과기정통부의 내년 R&D 예산을 배정하는 데 활용됐다. 그런데 S등급 사업 35개 가운데 13개(37%) 예산이 올해보다 줄었고, 총 삭감액은 1878억원에 이른 것이다.

과기정통부가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선순위에 놓고 지원해야 한다고 본 S등급 사업들의 예산이 기재부를 거친 뒤 줄줄이 삭감됐다. 기재부는 지난 8월29일 내년 정부 예산안을 발표하며 내년 R&D 예산을 올해보다 16.6%(5조2000억원)나 줄이는 내용을 포함했다.

고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의 ‘R&D 카르텔’ 한마디에 국가 R&D 예산이 줄줄이 삭감됐고, 과기정통부에서 S등급을 받은 사업 예산도 2000억원 가까이 줄었다”며 “꼭 필요한 기술 개발 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만큼 국회 국정감사와 예산 심의 과정에서 철저히 따져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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