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아이티 ‘국제 보안 병력’ 재투입

선명수 기자 2023. 10. 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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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 케냐 경찰 1000명 투입 등 국제사회 개입 승인
무정부상태·경제 붕괴로 갱단 장악…올해 최소 2500명 사망
과거 평화유지군 성범죄·전염병 전파…경찰 폭력 등 우려도
아이티 갱단 ‘G9’ 단원들이 지난 9월19일(현지시간) 반정부 시위가 열리고 있는 수도 포르토프랭스 거리를 무장한 채 활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엔이 갱단 폭력으로 치안 공백 상태에 놓인 아이티에 케냐 주도의 다국적 경찰을 투입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성폭력·전염병 전파 논란 끝에 아이티에서 철수한 지 6년여 만에 국제 보안유지 병력이 다시 투입되는 것이다. 사실상 ‘실패’로 끝났던 국제사회의 개입이 이번에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일(현지시간) 회의를 열고 아이티 갱단 소탕 및 치안 유지 등 다국적 보안 임무를 승인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에 따르면 다국적 경찰은 공항, 항구, 학교, 병원 등 주요 인프라를 보호하고 아이티 경찰과 함께 ‘표적 작전’을 수행한다. 올해 안에 아이티로 파견돼 1년간 임무를 수행하며, 주둔 시작 9개월 후 연장 여부를 검토한다. 케냐가 경찰 1000명을 파견할 예정이며, 바하마도 경찰 150명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자메이카, 앤티가바부다 등도 지원 의사를 밝혔고, 미국은 1억달러(약 1348억원) 규모의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중남미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는 수년째 갱단 폭력으로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놓인 세계 최빈국이다. 2010년 발생한 대지진과 콜레라로 몸살을 앓아온 아이티는 2021년 조브넬 모이즈 당시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공권력마저 붕괴했다. 입법부 역시 국회의원 임기 종료로 공백 상태다. 무너진 권력의 빈자리를 갱단이 파고들면서 극심한 혼란이 이어졌다. 유엔인권사무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8월까지 갱단 폭력으로 최소 2439명이 사망하고 902명이 다쳤다. 950여명은 납치됐다. 경제는 붕괴돼 인구 절반인 490만명이 기아 위기에 놓였다.

다국적 경찰 투입 결의안은 안보리에서 15개 이사회 회원국 가운데 13개국의 찬성으로 채택됐다. 아이티에 경찰력 투입을 반대해온 중국과 러시아는 기권했지만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중국은 병력 투입 대신 갱단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 강화를 주장해왔다. 아이티 정부에 따르면 200여개의 갱단이 소지한 총기 대부분이 미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보리는 이날 중국 측 요구에 따라 특정 개인에만 적용돼온 무기 수출 금지 조치 대상을 아이티 내 전 갱단으로 확대했다.

진 빅터 제네우스 아이티 외교장관은 이날 안보리 결의안 채택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아이티 국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라고 말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유엔 결의안이 “갱단에 고통받아온 아이티 국민들에게 절실한 도움을 제공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엔 평화유지군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아이티에서 외국 병력 투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디언은 “유엔과 다국적 경찰은 현지인을 학대한 전력이 있는 외부세력에 대한 아이티인들의 심각한 불신과 의구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0년 대지진 피해 복구 등을 이유로 아이티에 파견된 유엔 평화유지군이 콜레라균에 감염된 하수를 강에 버리면서 전염병이 창궐해 9500명이 사망하고 8만여명이 감염됐다. 콜레라 사태 6년여 만인 2016년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의 책임을 인정하고 아이티 국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여기에 100명 이상의 평화유지군이 아이티 어린이와 여성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인권단체 조사 결과가 공개되며 공분을 사자 평화유지군은 2017년 철수했다. 국제구호단체 ‘프로젝트 호프’의 제드 멜린은 “이번 개입이 성공하려면 다국적 경찰의 역할은 아이티인들이 자국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다국적 경찰을 주도하는 케냐 경찰의 인권 의식을 두고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케냐 경찰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봉쇄 정책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총을 쏘는 등 가혹하게 탄압한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케냐 공권력의 폭력을 추적해온 인권단체 ‘미싱 보이스’에 따르면 2007년 데이터 수집을 시작한 이후 경찰 폭력에 의해 사망한 이는 최소 1357명에 달한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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