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2023] X레이의 DNA 파괴 순간 포착…'아토초' 시대 연 과학자들, 물리학상(종합)
2023년 노벨 물리학상은 극한 과학에서 한계까지 짧은 시간을 포착하는 ‘아토초 과학’ 시대를 열어낸 물리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피에르 아고스티니(82)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교수, 페렌츠 크라우스(61) 독일 뮌헨공대 양자물리학과 교수, 앤 륄리에(65) 스웨덴 룬드대 교수 3명의 과학자를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3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올해 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전자동역학 연구에서 활용될 수 있는 아토초(100경분의 1초) 단위의 빛의 파동을 발생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다"며 "원자와 분자 내부에서 벌어지는 전자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인류에게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구현한 ‘극한으로 짧은 빛의 파동’은 전자가 움직이거나 에너지를 변화시키는 한순간을 포착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자의 세계에서 사건은 수십, 수백 분의 1초에 불과한 매우 짧은 시간에 일어난다. 너무 빠른 속도이기 때문에 인간은 인지하기 어렵다. 초당 80회의 날갯짓을 하는 벌새의 움직임도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인지 능력으로는 전자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수상자들은 너무나도 빠른 전자의 세계를 포착하기 위해 아주 짧은 순간 존재하는 빛의 파동을 고안해냈다. 벌새의 날갯짓을 촬영하는 고성능 사진기에서 아주 짧은 시간 빛의 노출이 이뤄지는 것처럼, 전자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전자의 속도를 뛰어넘는 빛의 파동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빛의 파동은 원자와 분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전자의 활동을 ‘순간포착’할 수 있게 했다.
앤 륄리에 교수는 1987년 적외선 레이저 빛을 불활성 기체에 투과시킬 때 다양한 빛의 광파(overtones)가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광파는 레이저 빔이 기체 안의 원자들과 부딪칠 때 일정한 주기를 갖고 발생했는데, 기존 레이저를 사용했을 때보다 더욱 짧으면서도 강한 반응을 보였다. 펨토초 빛의 파동을 구현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한 것이다.
아고스티니 교수는 빛의 파동을 지속할 수 있는 실험에 성공했다. 2001년 실시한 실험에서 250 아토초 동안 빛의 파동을 유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헝가리 출신의 과학자인 크라우스 교수는 이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650아토초 동안 지속되는 빛의 파동을 구현했다. 이를 통해 실제 전자의 움직임을 추적해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연구를 통해 ‘아토초 과학’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조동현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는 ”초고성능 현미경이 개발되면서 인류는 아주 작은 물체를 볼 수 있게 된 공간분해능을 얻게 됐다면, 아토초 빛의 파동은 아주 짧은 시간을 포착할 수 있게 된 ‘시간분해능’을 얻은 것으로 빗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토초 단위로 존재하는 빛의 파동은 다양한 과학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다. 의료 분야가 대표적이다. 아토초 파동을 활용하면 X-RAY에 DNA가 손상되는 아주 짧은 순간까지 관찰할 수 있다. 반도체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임현식 동국대 물리반도체과학부 교수는 ”펨토초 수준의 빛의 파동은 반도체에서 발생하는 아주 기민한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토초 기술은 물리학적으로도 큰 진전을 이룬 성과로 여겨진다. 남창희 기초과학연구원(IBS) 초강력 레이저과학연구단장은 ”아토초 빛의 파동을 활용하면 지금까진 볼 수 없었던 핵의 운동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에겐 2022년보다 약 100만 크로나 증액된 1100만 스웨덴 크로나(한화 약 13억 5894만원)이 수여된다. 이번 물리학상 수상자 3명은 상금을 3분의1씩 나눠갖는다. 올해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발표는 2일 생리의학상, 3일 물리학상, 4일 화학상 순으로 진행된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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