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물리학상에 아고스티니, 크러우스, 륄리에…전자 움직임 찍는 ‘극초고속 촬영술’ 고안

이정호 기자 2023. 10. 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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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경분의 1초로 깜빡이는 빛 파동 개발 공로
전자 움직임 규명하는 카메라 기술에 활용
(왼쪽부터)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피에르 아고스티니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교수(70)와 페렌츠 크러우스 독일 막스플랑크 양자광학연구소장(61), 안 륄리에 스웨덴 룬드대 교수(65). AFP연합뉴스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원자 속 전자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초고속 촬영기술을 고안해낸 과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3일(현지시간) 피에르 아고스티니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교수(70)와 페렌츠 크러우스 독일 막스플랑크 양자광학연구소장(61), 안 륄리에 스웨덴 룬드대 교수(65)를 올해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AFP통신은 아고스티니는 프랑스인이며 륄리에는 프랑스·스웨덴 이중국적자라고 전했다. 크러우스는 헝가리·오스트리아 이중국적자다. 또 륄리에는 마리 퀴리(1903년) 이래 역대 다섯번째이자, 2020년 이후 3년 만에 여성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다.

3인의 과학자에게 노벨물리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 연구의 핵심은 원자 속 전자의 움직임을 규명하기 위해 ‘아토초(100경분의 1초)’ 단위로 깜빡이는 빛을 만든 것이다. 1경은 1000조의 10배를 뜻한다. 아토초는 일반적으로 과학기술 연구 현장에서 많이 쓰이는 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나 나노초(10억분의 1초)보다 훨씬 짧은 단위다. 컴퓨터 같은 전자장비도 나노초 단위로 신호를 처리한다. 예컨대 수소 원자에서 전자가 원자핵을 한 바퀴 돌 때 160아토초가 걸린다.

수상자 3명이 이렇게 짧은 시간마다 반짝이는 빛을 만든 이유는 원자 내부에 있는 전자의 움직임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전자는 매우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어떻게 이동하는지 규명하려면 매우 짧은 단위로 반짝이는 빛이 필요하다. 이에 이번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과학자 3명은 매우 짧은 시간마다 물결치는 일종의 빛의 파동을 만들어냈다.

빛의 파동은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피사체의 움직임을 잡아내는 촬영 장비 구실을 한다. 빠르게 달리는 사람이나 동물을 카메라로 찍을 때 셔터 속도를 높이면 움직임이 더 사실적으로 묘사된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것과 유사한 원리다.

조동현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번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3명은 빠르게 움직이는 전자의 움직임을 찍는 일종의 고성능 카메라를 만든 셈”이라고 평가했다.

륄리에 교수는 적외선을 기초로 한 레이저를 특정 가스에 투과시키면 다양한 형태의 빛이 생긴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 레이저는 원자들과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데, 이때 전자를 겨냥한 빛이 방출된다. 아고스티니 교수와 크러우스 소장은 이렇게 만들어진 빛의 파동을 생산하고 쏘는 기술을 고안했다.

에바 올슨 노벨 물리학위원장은 “이번에 수상한 연구를 통해 전자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 수 있었다”며 “다음 단계는 전자에 의해 통제되는 물리학의 세계를 이용할 방법을 찾는 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이번 기술을 활용하면 전자가 다른 물질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정확히 알게 돼 지금보다 성능이 좋은 기기를 만들 수 있다. DNA 구조나 광합성 작용을 관찰하는 일도 가능하다. 특히 의료 진단 과정에서 분자 속 다양한 물질이 움직이는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돼 더 정확한 질병 확인이 가능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남창희 광주과학기술원(GIST) 물리·광과학과 교수는 “이번에 물리학상을 받은 연구는 원자 단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규명하는 방법을 찾은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다만 실용적인 목적으로 해당 연구가 사용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수상자에게는 총상금 1100만크로나(13억5000만원)가 주어진다. 상금은 공동 수상한 3명이 똑같이 나눈다. 앞으로 노벨상 수상자는 4일 화학상, 5일 문학상, 6일 평화상, 9일 경제학상 순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앞서 전날에는 메신저 리보핵산(mRNA)을 이용한 백신으로 코로나 19 퇴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커털린 커리코 헝가리 세게드대 교수(68)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드루 와이스먼 교수(64)가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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