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만의 정규리그 우승’ LG, 올해는 술 항아리 딸까
엘지(LG) 트윈스 2군 구장인 이천 챔피언스파크에는 술 항아리가 하나 있다. 고 구본무 엘지 그룹 회장이 우승하면 마시자고 1995년 스프링캠프 때 일본 오키나와 훈련장에서 사 온 아와모리 소주다. 직전 해(1994년) 스프링캠프 때 산 뒤 우승을 했던 터라 똑같이 한 것인데 지난해까지 이 술 항아리는 열리지 않았다. 2002년 정규리그 4위로 한국시리즈에 올라서 극적으로 우승하는가 싶었지만 체력 고갈로 삼성 라이온즈에 우승을 내줬다. 야구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술 항아리에 술이 다 말랐다”는 말이 심심찮게 돌았다.
그리고, 2023년. 드디어 아와모리 술 항아리가 열릴 기회가 왔다. 엘지가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냈기 때문이다. 엘지는 3일 경기가 없었지만 2위 케이티(KT) 위즈와 3위 엔씨(NC) 다이노스가 각각 기아(KIA) 타이거즈, 에스에스지(SSG) 랜더스에 패하며 남아 있던 매직 넘버 ‘1’을 지웠다. 엘지 선수단은 이날 롯데 자이언츠와 방문 경기(4~5일)를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다가 버스 안에서 정규리그 1위 확정 소식을 들었다. 엘지의 정규리그 우승은 1990년, 1994년에 이어 팀 역대 3번째. 엘지가 한국시리즈 무대에 서는 것은 2002년(준우승) 이후 21년 만이다.
엘지는 절정의 투타의 조화 속에 6월27일 단독 1위로 올라선 뒤 이날까지 단 한 번도 밑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3일 현재 성적은 82승51패2무(승률 0.617). 엘지는 팀 타율 1위(0.281), 팀 도루 1위(158개), 팀 출루율 1위(0.364), 팀 장타율 1위(0.397)에 올라 있다. 팀 평균자책점(3.67)은 2위인데 불펜 평균자책점은 1위(3.42)다.
공격에서는 홍창기가 타율 0.335로 팀 수위 타자를 기록 중이고, 오스틴이 엘지 외국인 타자 잔혹사를 끊으면서 타율 0.310, 22홈런 92타점으로 맹활약 중이다. 문보경(타율 0.304), 문성주(타율 0.294)가 한 단계 더 성장했고 신민재는 도루 35개(1위)로 상대 투수와 수비진을 뒤흔들었다. 마운드에서는 선발 플럿코, 켈리가 다소 흔들렸으나 임찬규가 12승3패 평균자책점 3.60으로 3선발 역할을 잘해냈다. 불펜에서는 마무리 고우석이 롤러코스터 투구를 보여줬지만 우완 베테랑 김진성(5승1패 20홀드), 유영찬(6승3패 10홀드), 함덕주(4승 16홀드)가 ‘믿을맨’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올해 엘지 지휘봉을 처음 잡은 염경엽 감독은 엘지 감독 잔혹사를 끊어내면서 부임 첫해에 팀을 정규리그 1위로 이끌었다. 작전을 너무 많이 써서 팬들의 원성을 듣기도 했으나 꿋꿋하게 자신만의 토털 베이스볼을 추구하면서 엘지의 28년 묵은 한을 풀어냈다. 염 감독도 사령탑으로는 처음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한다.
염경엽 감독은 구단을 통해 “한 시즌 힘들기도 했고, 우여곡절이 매우 많았지만 우리 선수들, 주장 오지환, 김현수, 투수에서는 김진성, 임찬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페넌트레이스 1등을 위해서 열심히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뛰어준 선수들에게 고맙고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더불어 “1년 동안 내가 화도 많이 내고, 잔소리도 많이 했지만, 선수들을 잘 리드해주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잘 이끌어준 코치진들에게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고도 했다. 엘지 캡틴 오지환은 “29년 만에 정규리그 우승도 벅찬 순간이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모두가 염원하는 통합우승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KBO리그가 단일리그로 진행된 1989년 이후 정규리그 1위 팀(양대 리그로 열린 1999~2000년 제외)이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것은 32번 중 27번으로 우승 확률이 84.4%에 이른다. 2010년 이후에는 2015년(두산 베어스), 2018년(SK 와이번스)에만 두 차례 업셋 우승이 있었다. 염경엽 감독은 “첫번째 목표는 달성해서 너무 기쁘고, 가장 큰 두 번째 목표인 한국시리즈가 남아 있다. 지금부터 휴식과 훈련 계획을 잘 짜고 준비 잘해서 마지막까지 우리가 웃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엘지 구단에는 아와모리 소주 외에도 한국시리즈 MVP 선수에게 주기 위해 고 구본무 회장이 1998년 국외 출장지에서 사온 롤렉스 시계(당시 가격 8000만원)도 있다. 과연 금고 속에 오랜 기간 보관돼 있는 롤렉스 시계가 올해는 주인을 찾을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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