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 군사기업, 3번이나 파산 했다는데…극복한 비결 뭐길래 [추동훈의 흥부전]
[흥부전-25][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20] 앨런 록히드
10월 1일은 대한민국 국군의 발전을 기념하는 국군의날입니다. 올해는 추석 연휴 한가운데 끼어있는 관계로 건군 75주년 행사가 지난 9월 26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가운데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안보 지형도 역시 연신 출렁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전쟁의 중심지 인근의 유럽 국가들은 혹시 모를 전시 상황을 대비해 국방비를 증액하고 무기 확보에 애를 쓰고 있다는데요. 문제는 전쟁으로 탄약과 무기의 가격이 오르는 국방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겁니다. 이로 인해 많은 국가와 군인, 민간인들이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미소를 짓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 최대의 항공우주 및 방위사업체 기업 록히드 마틴입니다.
넓은 들판에서 뛰놀던 두 형제는 연날리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연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날려보고, 더 잘 날수 있는 연을 직접 제작해보며 ‘나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후에도 두 형제는 활공 실험에 대한 각종 논문을 읽어보거나 직접 연구하며 직접 비행기 모형을 제작하는데 심취했습니다. 그들의 이복형인 빅터 록히드 역시 이들과 함께 이러한 비행기 및 날 것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학구열이 불타올랐던 이복형 빅터는 시카고에서 하나의 항공 글라이더를 인수했습니다. 글라이더에 동력 장치를 매달아 하늘을 날 수 있도록 개발하려 한 그는 동생 앨런을 불러들였습니다. 앨런은 시카고에 도착해 “항공에서 시속 40~50마일로 안정적으로 운행할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당연히 그의 형 말콤도 합류했습니다. 세 형제가 힘을 모은 끝에 그들은 2기통, 12마력 모터를 만들어 글라이더에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1910년 앨런은 시카고에서 첫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투자자를 수소문한 형제들은 알코 크랩 컴퍼니를 운영중인 맥스 맘락으로부터 4000달러를 투자받았습니다. 이들 형제는 1912년 투자사의 이름을 딴 ‘알코 하이드로-에어로플레인 컴퍼니’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비행기 개발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18개월 후인 1913년 6월 15일 그들은 ‘알코 넘버1’이라고 불리는 모델G 비행기가 세상에 나타납니다. 그들은 타고 금문교 입구부터 샌프란시스코 베이까지 날아가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고도 300피트로 시속 60마일로 하늘을 난 모델G는 이날 3번이나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이 비행기는 미국 최초의 3인승 수상 비행기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하지만 투자자의 변심이 그들의 발목을 잡아버립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그들 형제가 아녔습니다. 1915년, 새로운 투자자인 폴 마이어의 재정지원에 힘입어 다시금 비행기 사업에 뛰어듭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파나마-태평양 국제 박람회에 참석한 형제는 모델G를 앞세워 사업을 재개합니다. 이 후 5개월만에 그들은 600명의 유료 승객을 태웠고 4000달러의 수익을 올립니다.
당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요. 직전 화에 다루었던 핸리 포드는 당시 캘리포니아를 방문했는데요. 모든 돈을 다 지불하더라도 조금이라도 하늘에 떠서 비행을 하고싶지 않다고 비행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자동차의 왕이, 비행기만큼은 무서웠나 봅니다.
이렇게 돈을 벌기 시작한 록히드 형제는 기존의 회사 이름을 ‘록히드 에어크래프트 메뉴팩쳐링 컴퍼니’로 바꾸며 자신들의 이름을 내세운 회사를 선보입니다. 본사도 산타바라라로 이전하며 본격적인 록히드의 시대가 열립니다.
록히드는 전세기를 띄워 사람들에 회사를 홍보했고 여러 영화 제작사들이 록히드의 비행기를 이용해 항공촬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야심작 모델S-1을 개발해 대중에 공개했습니다. 역대급 성능이라 불리는 해당 비행기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데 2500달러의 비싼 가격 탓에 시장의 외면을 받습니다. 특히 당시 세계 1차대전으로 항공기 개발 경쟁이 치열했고 350달러에 판매됐던 커티스의 JN-4 모델과 경쟁하기엔 가격 경쟁력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총력을 기울여 개발한 항공기가 시장의 외면을 받으며 회사는 크게 휘청합니다. 결국 1921년 회사는 파산해버립니다.
좌절을 맛본 앨런은 생계를 위해 부동산 중개원으로 일하기도 하며 시간이 날때마다 항공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아뒀습니다. 그에게 부동산 중개인이란 직업은 흥미롭지 않았지만 그래도 돈벌이가 되는 성공적인 직업이었습니다.
1926년 앨런 록히드는 동업자 노스롭과 함께 다시 항공기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벽돌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프레드 킬러(Fred Keeler)로부터 2만2500달러를 투자받고 록히드가 2500달러를 내놓아 ‘록히드 에어크래프트 코어퍼레이션’을 설립합니다. 투자자인 킬러는 CEO로, 록히드는 부사장 겸 총책임자로, 노스롭은 수석 엔지니어로 취임했습니다. 부동산 중개업도 병행한 앨런은 할리우드의 한 차고에서 사업을 재개하며 비행기 제작에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비행기가 바로 ‘베가’입니다. 1만7500달러를 투자하며 회사의 명운을 건 작품 베가는 6명이 탈 수 있고 항속거리가 1000마일인 고속 단엽기였습니다.
3번의 파산을 버텨낸 것은 록히드의 항공기와 비행기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이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은 그의 노력덕에 지금의 록히드 마틴이 태어난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국군의 날을 맞아 되돌아보는 군인정신의 핵심덕목이 바로 록히드가 여러 차례의 위기를 이겨냈던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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