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가 부모가 된 29년의 세월…LG, '버스 안에서' KS 직행 확정

이대호 2023. 10. 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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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불펜에 화끈한 타격 앞세워 6월 이후 선두 독주하고 결승선까지
한국시리즈 우승해야 진짜 '한풀이'…오키나와 소주·롤렉스 시계 빛 볼까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LG 트윈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1994년 아버지 손을 꼭 붙잡고 서울 잠실구장에서 LG 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지켜봤던 꼬마는 이제 29년 전의 자기만 한 아이에게 LG 유니폼을 입히고 '무적 LG'를 외친다.

꼬박 한 세대가 지나서야 정규리그 1위,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낸 LG 팬에게서 들을 수 있는 흔하디흔한 사연이다.

정규리그 1위까지 '매직넘버 1'만을 남겨뒀던 LG는 3일 매직넘버를 따지는 대상 팀인 kt wiz와 NC 다이노스가 나란히 패해 이날 경기를 치르지 않고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했다.

LG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4일부터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리는 롯데 자이언츠와 2연전을 위해 이동 중인 LG 선수단은 버스 안에서 정규리그 1위 확정 소식을 접했다.

LG의 한국시리즈 진출은 2002년 이후 21년 만이며, 한국시리즈 직행은 1994년 이후 29년 만이다.

1994년 126경기에서 81승 45패, 승률 0.643을 남기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태평양 돌핀스를 맞아 시리즈 전적 4전 전승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었던 LG는 올해 세 번째 우승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다.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였던 2002년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시즌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고도 플레이오프에서 키움 히어로즈에 1승 3패로 덜미가 잡혔던 LG는 '우승 청부사'로 염경엽 감독을 택했다.

4월부터 상위권을 점령하며 SSG 랜더스, 롯데 자이언츠와 '3강 체제'로 출발한 LG는 한때 팀 타율 3할에 이르는 강력한 타선의 힘으로 경쟁 팀을 하나둘 제쳤다.

먼저 롯데가 선두 경쟁에서 탈락하고, 6월 27일 인천 SSG전에서 리그 선두로 도약한 이후에는 한 번도 순위표 꼭대기를 놓치지 않았다.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난 7월 말에는 7연승을 질주해 경쟁 팀으로부터 멀찍이 달아나 독주 채비를 갖췄다.

시즌 초반 최하위로 출발했다가 놀라운 상승세를 보여주며 한때 LG를 4.5경기 차까지 추격했던 kt wiz도 좀처럼 연패에 빠지지 않는 LG의 탄탄한 전력에 더는 따라붙지 못했다.

환호하는 LG 더그아웃 [연합뉴스 자료사진]

LG는 전반기 팀 에이스로 활약한 애덤 플럿코가 후반기 이탈했음에도 기회만 엿보던 이지강, 이정용 등 대체 선발 요원의 활약으로 공백을 훌륭하게 채웠다.

여기에 베테랑 김진성을 필두로 함덕주, 백승현, 박명근, 유영찬이 이룬 불펜진은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작년까지 리그 최강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고우석, 국가대표 붙박이 불펜 투수로 성장한 정우영이 예년보다 못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LG의 '지키는 야구'에는 문제가 없었다.

LG의 강력한 불펜은 팀 성적으로 이어졌다.

연장전 승률 1위(9승 3무 2패, 승률 0.750),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내) 실패 시 팀 승률(46승 42패, 0.523), 최다 역전승(40회) 모두 강력한 불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잘 짜인 1번부터 9번까지 9명의 주전 선발 타순은 LG와 상대한 9개 구단 모두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끝내기 안타에 환호하는 LG 박해민 [연합뉴스 자료사진]

3일까지 팀 타율(0.281), 출루율(0.364), 장타율(0.397), OPS(출루율+장타율·0.761), 경기당 득점(5.1점)까지 모두 리그 1위를 달렸다.

염 감독이 "올해 성과는 9명의 주전 선수가 큰 부상 없이 시즌 마지막까지 뛴 것"이라며 트레이닝 파트에 공을 돌렸을 정도로, 장기 레이스에서 변수를 최대한 줄인 LG 타선은 상승세의 원동력이 됐다.

여기에 시즌 초반 숱한 비판 여론에도 '뛰는 야구'를 강조해 선수들의 공격적인 주루를 끌어낸 염 감독의 뚝심, 주장 오지환을 중심으로 뭉친 선수단의 팀워크는 LG의 상승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제 일차 목표를 달성한 LG는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진정한 한풀이에 나선다.

일본 오키나와 지역 명주인 '아와모리 소주'와 '롤렉스 시계'는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염원을 담은 두 가지 물건이다.

전반기 부진을 딛고 후반기에 부활한 LG 케이시 켈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LG 팬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 두 가지 '아이템'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해야 빛을 볼 수 있다.

2018년 세상을 떠난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은 2군 선수 이름까지 줄줄이 외울 정도로 야구를 사랑했다.

1994년 일본 오키나와 캠프가 끝난 뒤 지역 특산 증류주인 '아와모리 소주'로 건배하고 우승을 맛봤던 구 전 회장은 1995년 시즌을 앞두고 '또 우승하면 이 소주로 축배를 들자'며 같은 소주 3병을 샀다.

그러나 지난 세월 동안 소주는 한 번도 열리지 못한 채 잠들어 있다.

구 전 회장이 1998년 '우승하면 최우수선수(MVP)에게 지급하라'며 당시 돈으로 8천만원에 구입한 롤렉스 시계도 주인을 기다린다.

우승 축승연에 짙은 소주 향기가 풍기고, 롤렉스 시계가 진정한 주인을 찾아야 LG의 29년 가까운 세월의 한이 풀린다.

4b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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