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POINT] 한가위도 못 비켜간 노인 빈곤

박민기 기자(mkp@mk.co.kr) 입력 2023. 10. 3. 17:09 수정 2023. 10. 3. 20: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추석 연휴 막바지인 2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집'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독거노인과 노숙인 등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명절을 맞아 다들 서울을 떠나면서 텅 빈 도심 속 딱히 갈 곳이 없어 끼니라도 해결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대부분 한 손에 지팡이 또는 폐지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수십 년은 된 듯 색 바랜 양복을 입고 온 90대 노인은 자원봉사자들과 익숙한 인사를 나눴다.

오전 11시 식사가 시작됐다. 마치 공장 같았다. 입구를 배회하던 노인들은 시간이 되자 약속이나 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각자 식판이 놓인 자리 앞에 앉았다.

다 함께 식사 전 기도를 마친 노인들은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식판째 들고 마지막 남은 국물 한 방울까지 마신 노인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자리는 이내 밖에서 기다리던 다른 노인의 차지가 됐다. 문밖에서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노인만 수백 명이었다. 마치 공장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같았다.

올해 추석 연휴엔 평소보다 더 많은 노인이 토마스의집을 찾았다. 이날 307명을 비롯해 추석 당일인 지난달 29일에 350명, 다음 날인 30일에는 290명이 몰렸다. 명절 등 특별한 날이 아닌 평소 하루 평균 방문자는 260~300명이다.

매일 수백 명의 끼니를 책임지는 토마스의집이지만 정부 지원은 일절 없다. 100% 후원으로 운영된다. 상황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신도림에 있는 '사랑의집 무료 급식소' 역시 정부 지원 없이 회장이 사비를 털어 간신히 운영되는 실정이다. 토마스의집은 수차례 서울시와 영등포구청 등을 찾아 지원을 부탁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지방자치단체가 요구하는 '노인을 위한 쉼터 마련' 등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마스의집 측은 "지자체가 강조하는 행정과 현장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며 "정부 관계자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 현장을 살펴봤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기준 국내에 만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약 187만명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국의 처분가능소득 기준 2021년 노인 빈곤율은 37.6%로,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2025년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한국에서 독거노인 등을 위한 정부 차원의 효율적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정부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노인을 실은 컨베이어 벨트는 앞으로도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계속 돌아갈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날(2일)은 한국 '노인의 날'이었다.

[박민기 사회부 기자]

Copyright©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