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불안 겪는 ‘청소년’에 집중하는 영국[기후위기 적응 해외는, 지금]

강한들 기자 2023. 10. 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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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영국과 독일의 시민사회
그린피스 자원활동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게일 번스가 지난달 18일 영국 런던 그린피스 영국 사무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환경과 기후변화에 관한 기사를 읽기 시작한 건…딸이 태어날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지난달 18일 영국 런던 그린피스 사무소에서 만난 활동가 테오 윌리엄스(가명)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이날 기자는 정신과 의사이자 그린피스 자원활동가로 일하는 게일 번스가 이끄는 모의 기후위기 ‘듣기 모임’에 참여했다. 한국에서 찾아간 기자를 위해 특별히 만든 자리였다. 이 자리에 함께한 윌리엄스는 “기후위기로 엄청난 수의 사람, 동물이 죽을 것이란 걸 알았고, 그 부담은 불평등하다는 것도 알게 됐는데도 다음 선거에 집중하는 정치인, 단기적 경영 성과에 집중하는 산업계 의사결정권자에 특히 답답하다”라며 “기후위기 대응에는 차라리 일종의 권위주의가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든다”라고 말했다.

윌리엄스에 이어 기자와 번스도 각 3분씩 기후위기에 대한 생각, 감정, 자신이 생각하는 해결책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모의 듣기 모임이지만 이야기하는 모든 내용은 평소와 같이 비밀이 원칙이라 기자는 기사화에 앞서 허락을 구했다. 번스는 “서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면, 지치지 않고 기후 위기 문제 해결에 더욱 낙관적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기후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진다. 그러나 이를 마주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무력감과 불안감에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난 3월에 나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종합보고서’는 “기후변화는 질병·조기 사망 뿐 아니라, 불안·스트레스를 포함한 정신 건강 문제도 증가시킬 것”이라고 명시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14일 독일 베를린, 17일 영국 옥스퍼드, 18일 런던에서 각국 시민사회가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봤다. 이들은 시민을 서로 만나게 하고 엮어, 회복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옥스퍼드 기반 기후심리동맹(Climate Psychology Alliance, CPA)은 청년 세대의 ‘기후 불안’에 대응하는 것에 무게를 뒀다. 영국 그린피스와 독일의 ‘미래를 위한 심리학(Psy 4 future)’은 기후 활동가들이 느끼는 감정에 집중했다.

청소년 무료 상담 지원하는 영국 기후심리동맹

기후심리동맹(CPA)은 영국 옥스퍼드를 기반으로 세계 곳곳에 네트워크가 있는 심리 전문가 단체다. 2012년 회원 수 30~40명 정도로 설립됐고 지난달 약 600명까지 늘었다. 회원 대부분이 임상 심리학자, 상담사, 정신과 의사 등이다. CPA의 대표이자 정신과 의사인 주디스 앤더슨은 “기후변화의 심리적 문제는 삶과 죽음의 문제”라며 “기온 상승, 재난으로 인해 정신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이는 실존적 위기”라고 말했다.

CPA는 기후·생태 문제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시민들의 회복력 향상을 위해 3회까지 무료 상담을 지원한다. 시민들이 참여해 기후위기가 자신에게, 공동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하는 ‘기후 카페’도 운영한다. 상담사를 재교육하고, 기업·단체 등의 내부 상담은 유상으로 지원한다. 책을 쓰는 등 학술 활동도 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기반으로 약 600명의 회원이 있는 기후 심리 전문가 집단 기후심리동맹(Climate Psychology Alliance, CPA) 주디스 앤더슨 대표가 지난달 17일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CPA는 무엇보다 ‘청년 세대’의 고통에 집중한다. 핀란드, 영국, 미국 등의 학자들이 공동 연구해 국제 의학 학술지인 랜싯에 2021년 발표한 ‘어린이와 청소년의 기후 불안과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대응에 대한 믿음’ 논문을 보면 10개국의 16~25세 청소년 1만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59%는 기후변화에 대해 ‘극도로 걱정’했다. 슬픔, 불안, 분노, 무력, 무기력, 죄책감 등의 감정을 느끼는 청소년이 50% 이상이었다.

CPA는 한 달에 한 번 청소년만을 위한 심리적 지원을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한다. 목적은 ‘급진적 돌봄 공간(radical care space)’ 제공이다. 청소년들이 서로 연결되고, 회복력을 갖춰서 다시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권력을 가진 어른들이 변화할 힘은 주지 않은 채, 청소년에게 부담만 전가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위해서는 ‘보호자 기후 서클’을 운영한다. 8명 단위 소규모 그룹에서 보호자들이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고, 어떤 정서적 ‘동행’이 필요한지 서로 이야기한다.

활동가 지원 집중하는 영국 그린피스, 독일 ‘미래를 위한 심리학’

그린피스 영국 사무소는 상근·자원활동가를 대상으로 기후위기 ‘듣기 모임’을 진행한다. 지난 4년간 수백 명의 활동가가 참여했다. 번스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각자의 문제를 이해하는 공간은 기초 중의 기초”라며 “다루기 어려운 감정을 꺼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필요한 활동을 하는데도 정신적 여유가 생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독일에서도 유사한 활동을 하는 단체가 있다. 2019년 만들어진 독일 기반 심리 전문가 단체 ‘미래를 위한 심리학자(Psychologists for Future)’는 멸종 반란(XR),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 등 기후 단체 활동가들을 무료로 지원한다. 단체 내 갈등을 중재하고, 활동가의 정신 건강도 챙긴다. 기후위기에 대한 감정 공유 모임도 진행한다. 단체에서 활동하는 카타리나 시먼스는 “기후 불안은 다른 심리적 문제와 다르고, 미래에 우리 발등에도 떨어질 수 있는 문제”라며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찾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공동체 활동을 하는 게 기후 고통을 해소할 방법”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심리학 전문가 단체인 ‘미래를 위한 심리학’의 카타리나 시먼스가 독일 베를린의 한 카페에서 지난달 14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이들은 모두 ‘기후 불안’은 질병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시먼스는 “생태계가 붕괴하고, 사회가 무너질 수 있는 기후위기의 현실을 알면 불안해지고, 이는 정상적인 반응”이라며 “위협적인 일에 직면했을 때 불안해하는 게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기후변화로 심리적 문제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제 기후변화 독립 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은 세계 각국이 한국의 정책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한다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은 3~4도 오를 것이라 분석했다. 지구 평균 기온이 이만큼 오르면 식량 부족 등 이유로 인류 문명이 붕괴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번스는 “청년의 약 60%는 지구가 멸망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내가 자랄 때는 ‘핵전쟁의 가능성’이 위험하다고 느꼈지만, 이렇게 높은 비율은 아니었다”라며 “각국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추가 기온 상승을 제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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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옥스퍼드·독일 베를린 |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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