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처음이자 마지막이죠"…'직장인 양궁 국대' 주재훈의 무한도전
"항저우행 허락해준 회사와 아내에게 감사"
(항저우=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아 동메달전이 있었죠? 머리가 하얘져서…"
주재훈(한국수력원자력)은 3일 중국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 양궁장에서 치러진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컴파운드 양궁 남자 개인전 준결승에서 패배한 뒤 이렇게 말했다.
'최강' 한국 양궁 국가대표라면 누구나 '강심장'이다. 웬만해서는 떨지 않는다.
그런데 주재훈은 좀 다르다. 기자들 앞에 서자 처음에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소감을 말했다.
양재원(상무)과 개인전 동메달전이 남아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기자들이 말해주자 그제야 "잊고 있었어요"라고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법한 게 아시안게임처럼 큰 무대에 서는 게 주재훈에게는 처음이다.
주재훈은 다른 국가대표들과 다르게 전문적인 양궁 교육을 받지 않는 '동호인 출신' 선수다.
어릴 적부터 양궁을 선망해오던 그는 대학생이던 2016년 우연한 기회에 경북 경산의 컴파운드 양궁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취미 궁사'로 입문했다.
동호인 대회에서 1등을 도맡던 그는 아시안게임에 나가고 싶다는 꿈을 키워나갔다. 결국 다섯 차례 도전 끝에 2023년도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 태극마크를 달았다.
올해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나선 그는 월드컵 2차, 4차 대회에서 각각 개인전 64강, 16강의 성적을 냈고, 아시아컵 3차 대회에서는 32강에서 탈락했다.
이날 오른 아시안게임 준결승전이 그에게는 생애 최고의 무대인 셈이다.
그에게 패배를 안긴 인도의 아비셰브 베르마는 주재훈이 활을 잡기도 전인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은메달을 차지한 베테랑이다.
주재훈은 "준결승까지 간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 자신은 만족한다"면서도 "조금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초반 페이스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충분히 이길 수도 있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주재훈을 제외한 3명의 남자 컴파운드 대표팀 선수들은 당연히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자라온 환경이 다른 만큼 처음에는 함께 지내기 어색했지만, 지금은 주재훈이 "얘들이 이제 선을 넘어도 너무 넘는다"고 말할 정도로 친해졌다.
동료들은 동호회에서 양궁을 배운 주재훈의 자세가 좀 어설퍼 보이는지 맨날 '야매 양궁'이라고 놀린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그의 실력만큼은 확실하게 인정해주고 있다며 주재훈은 고마워했다.
주재훈은 1일 진행된 예선 라운드에서 한국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내 개인전부터 단체전, 혼성전까지 3종목 모두에 출전하게 됐다.
주재훈은 "이 느낌을 잊지 않고 재정비해서 다음에 있을 경기에서 모두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꼭 노력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취미로 하는 양궁이지만, 이번 대회가 그에게는 간절하다. 다시는 서지 못할 아시안게임 무대일 수도 있어서다. 그는 "아마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아시안게임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직업 선수가 아니다 보니 국제대회 준비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청원경찰로 일하고 있다. 진천 선수촌에 입촌해야 할 때면 회사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주재훈은 "전례가 없는 일인데, 회사에서 편의를 봐줬다"며 회사에 고마워했다.
남편 없이 집안을 돌봐야 하는 부인도 눈에 밟힌다.
주재훈은 두 살, 다섯 살 아이가 있는데, 둘 다 아들이다.
주재훈은 "다른 집 같았으면 극구 반대하고 갈라서자고 했을 텐데, 와이프가 다행히 응원해줬다. 한 번뿐인 기회니까 다녀오라고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중에 아이들이 다 크게 되면 다시 국가대표에 도전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이 고생을 부인에게 계속 시킬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주재훈은 취재진과 헤어지기 직전 회사 자랑을 했다.
"저희 한국수력원자력은 친환경 기업입니다.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30% 이상을 담당하는 그런 회사입니다"라고 준비해온 듯 줄줄 읊었다.
항저우에서도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직장인 국가대표' 주재훈이다.
a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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