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가는 부분은 남겨둔다”···금문 연구 14권 펴낸 최남규의 연구 신조
다문궐의(多聞闕疑) 다견궐태(多見闕殆). “많이 듣고 참고하되 의심이 드는 내용은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많이 보되 의심 가는 부분은 남겨둔다“는 뜻의 말이다. <논어> 위정(爲政) 편에 나오는 이 말은 중국 금문(金文) 연구 권위자 최남규(전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연구 신조다.
최남규의 <중국 금문 연구 총서-서주편>은 이런 지향의 결과물이다. 1140개의 청동기 금문을 고석(考釋, 고문자를 고증하고 해석하는 것)했다. 금문을 기물 종류에 따라 식기(食器), 주기(酒器), 수기(水器), 팽기(烹器), 악기(樂器)로 나눴다. 그 고석 결과를 총 14권으로 펴냈다.
최남규는 “이처럼 방대하고 종합적인 연구총서는 중국 타이완 일본 등 어느 나라에도 없었다. 세계에서 최초로 가장 많은 양의 금문을 종합적으로 연구한 책일 것”이라고 자평한다.
40여 년 지속한 연구 결과물이다. 전북대 중어중문학과를 1984년 졸업한 뒤 1986년 대만 동해대학으로 유학 갔다. “40여 년 전 고문자를 처음 대할 때의 두려움과 설렘이 눈에 생생합니다.” 최남규는 “그저 어렵고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준비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그야말로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고 말한다. 이 학교 중문 연구소에서 중국 고대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중국 남경대학에서 중국 고대시가로, 남경예술대학에서 중국 서예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금문 연구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14권도 거의 혼자 수정했다고 한다. 최남규는 “금문 자체가 난해한 점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국내에 금문을 연구할 만한 중요한 연구 자료가 많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고 말한다. 금문 연구의 ‘단장취의(斷章取義)’도 적절한 참고문헌이 적기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남이 쓴 문장이나 시(詩)의 한 부분을 들어, 그 문장이나 시가 가진 전체적인 뜻과는 관계없이 인용된 부분만을 이용하는 것이나 그 인용으로 자기의 주장이나 생각을 합리화”한다는 뜻이 단장취의다.
최남규는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뜻의 금일아행적(今日我行蹟)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을 인용하며 말했다. “고문자 연구에 종사하는 학자들이 후배 연구자들을 위해 밑거름이 될 연구를 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하려 합니다.”
공부와 연구엔 끝이나 완성이 없기 마련이다. 최남규는 책들을 두고 “최대한 점검을 했지만 오자를 비롯한 많은 실수가 발견되리라 본다. 너무 과감한 결론과 성숙하지 못한 증거를 제시한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오류 가능성을 두고 최남규는 앞선 학자들을 모범으로 삼는다. 용경(容庚)은 ‘금문편(金文編)’을 1925년부터 1985년까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수정했다고 한다. 곽말약도 <양주금문사대계도록고석(兩周金文辭大系圖錄考釋)>을 세상을 떠나던 1987년까지 수정했다고 전했다. “대학자가 이러했는데, 하물며 일개 무명의 학자로서는 어떠하겠습니까. 앞으로 동학이나 후학들이 지적해주는 훌륭한 학설이나 의견을 항상 경청하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수정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금문은 청동기 시대에 금속(청동)에 주조하거나 새긴 문자다. 가장 유명한 금문 중 하나가 1976년 중국 부봉현에서 발견된 ‘사장반(史牆盤)’이다. 284자의 명문은 주 왕실 7대 제왕의 사적과 공, 미씨 집안의 장이라는 이가 집안 선조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미씨 집안 내력은 사장반 발견 전까지 몰랐다고 한다. 최남규는 사장반 등을 두고 “금문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자료 중 하나”라고 했다.
글자나 그릇 이미지는 대중에게도 익숙한데 금문 내용을 아는 이는 드물다. 최남규는 “유교를 대표하는 공자가 그토록 선망하였던 나라가 주나라다. 지금 우리가 읽는 청동기 금문이 바로 공자의 이상 세계인 주나라의 문건”이라고 설명한다.
최남규는 대중과도 자주 만나려 한다. 지난 8월엔 ‘동아시아 한자문명로드 답사’(역사문화체험)에 참가했다. 섬서성 일대의 한자문화를 체험하는 활동이다. ‘섬서고고박물관’, ‘주원박물관’, ‘청동기박물원’을 다녀왔다. 세 번째 방문이다. 최남규는 “청동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청동기에 관한 형태학이나 문자 해독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연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청동기의 의미와 가치나 내용은 한글로 번역된 내용을 이해하고 청동기 그 자체만을 감상하면 그만일 것”이라고 했다.
최남규는 “글자는 삶의 동반자”아라고 했다. 주말에는 고문자 금문을 임모(臨摹)한다. 임모는 글자를 모사(摹寫)하는 것이다. “금문은 오랜 세월 지하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부식되어 보이지 않거나, 이체자(異體字)가 많다. 획과 획 사이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오독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 임모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말 금문과 고문자 서체를 이용한 서예도 한다. “갑골문은 딱딱한 거북이 등딱지에 날카로운 물체를 이용하여 새긴 문자이기 때문에 직선의 획이 주를 이루지만, 금문은 주조한 서체이기 때문에 필획이 두껍고 풍성합니다.” 금문은 도형문자의 형태를 가졌다. 그는 “형태적 특징을 알면서 한다면 서예 작품의 다양성은 물론 예술적 아름다움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서예를 하면서 글자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했다.
최남규는 <논어>와 <사서오경>에 관한 책들도 냈다. 지난해 출간한 <주제로 읽는 논어> 서문에 이렇게 썼다.“우리가 <논어>를 읽는 것은 과거 유교로의 회귀가 아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중국문화에 대한 수용이 비평 없이 무조건적인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현대 한국사회는 전통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독창적이고 새로운 문화사상을 융합·창출해 냈다. 그러므로 그동안 우리가 경시해 왔던 ‘중국의 수천 년을 이어온 지혜’ 즉 <논어>를 지금의 순수 한국 문화의식에 접목시켜 ‘온고지신(溫故知新)’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이 서문이 곧 ‘금문’을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온고지신’은 종래의 규칙과 관례를 무조건 매달리는 ‘묵수성규(墨守成規)와는 다릅니다. 전통의 힘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한 단계 발전시키고 추진력을 보태는 것이 온고지신입니다.”
최남규는 ‘동주(춘추전국) 시기’와 ‘은나라 시기’ 금문 연구도 곧 책으로 펴낼 것이라고 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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