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들려주는 ‘문래동 할머니’[천지수가 읽은 그림책]

기자 2023. 10. 3. 14: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래동 할머니’ 표지



intro

그림책을 읽다 보면 왠지 모를 아늑한 기분에 빠지곤 한다.

가장 소중한 존재가 돼 보살핌을 받는 느낌이랄까. 온 우주가 나를 향해 미소 지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휙~ 하고 나를 그 시간으로 보내주는, 그림책은 폭신하고 따뜻한 타임머신이다.

화가 천지수가 읽은 여덟 번째 그림책은 ‘문래동 할머니’(손혜진 그림 에세이 / 책고래)이다.

“나는 도시에 삽니다. 나의 도시는 초록입니다.”

손혜진 그림 에세이 ‘문래동 할머니’는 우리가 평범하게 마주칠 수 있는 할머니의 이야기다. 도시에 사는 할머니는 자신의 일기를 직접 들려주는 것처럼 꾸밈이 없이 일상을 이야기한다. 오랜 세월 살아온 할머니가 발견한 행복은 평범한 날들 안에 있으며,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이미 머물러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문래동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는 마트에서 화초를 사서 사람들 사이로 걸어간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할머니에게는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의 생동감 있는 붓 터치는 화초를 새로운 식구처럼 여기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잘 표현했다. 그런 감성을 가진 할머니여서일까? 아침에 해가 뜨면 그림 도구를 챙겨서 산책을 나간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나무 기둥에 기대어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의 모습은 매우 평온하고도 아름답다. 자연을 사랑하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나의 미래의 모습 같다는 생각에 그림과 이야기에 더 빠져든다.

화초를 많이 기르는 할머니의 집은 작은 숲 같다. 할머니는 몸이 무거운 날에도 스스로를 돌보며 반찬을 만들고 빨래를 개는 등의 일상을 이어 나간다. 화초 분갈이를 위해 밖으로 나간 할머니는 이웃집 아이와도 쉽게 가까워지고 아이들과 친구가 된다. 손녀뻘과도 친구가 되는 이 문래동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 멋진 할머니로 보인다. 나도 할머니 정도의 나이가 됐을 때 동네 아이들이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나이를 떠나 친구가 될 수 있으려면, 세월의 차이에 대한 우선순위는 잊어야 하고, 마음의 문턱을 낮추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그림책’이 아닐까? 할머니의 집에 놀러 온 동네 아이도 할머니의 그림들을 보고 많은 친근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림은 설명하지 않아도 자신만의 답을 찾아 교감할 수 있는 정신적 산물이다. 세대를 아울러서 같이 즐기고 교류하기 좋은 매개체로 그림책은 단연 최고라고 믿는다. 나 또한 지금 ‘문래동 할머니’의 그림책을 보면서 일상에서 만나는 할머니들을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미래에 할머니가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그리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천지수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에는 각종 초록의 식물들이 가득한 집에서 할머니가 새 식구가 된 화초에 물을 주고 있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삭막한 도시에서도 “나의 도시는 초록입니다”라고 표현할 만한 만족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일 수도 있겠다. 그런 마음의 여유와 평화를 느낄 수 있다면, 세월이 가서 늙어 가는 것도 삶의 기쁨을 줄 수 있는 소중한 과정 중 하나라고 여겨진다. 늙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늙어 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있다.

그림책 ‘문래동 할머니’는 그런 아쉬운 마음에서 편안하고 자유롭게 해준다.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최고의 행복과 특별함이라고 일깨워 주는 고마운 책이다.

천지수(화가·그림책서평가)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