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선수 병특이 합당?"…"준비하고 경쟁하는 모습이 영감 준다면 그게 스포츠" [윤선영의 겜성월드]
"몸을 움직여서 활동하는 게 스포츠에 대해 갖고 있던 관념인데, 경기를 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많은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경쟁하는 모습이 영감을 일으킨다면 그게 스포츠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리그 오브 레전드(LoL)' 대표팀의 주장이자 e스포츠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페이커' 이상혁(27)이 지난달 30일 중국 항저우 그랜드뉴센추리호텔의 대한체육회 스포츠외교라운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밝힌 e스포츠에 관한 견해다. 그는 '기성세대 중에는 게임을 스포츠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있다'는 지적에 "e스포츠도 스포츠"라고 답했다.
e스포츠는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정도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고정관념과 편견, 틀에 박힌 낡은 시각이 여전하다. "땀을 흘리지 않는 e스포츠가 과연 스포츠인가?", "e스포츠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이 합당한가"라는 시각이 있다. 여기에는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도입 논란 등 게임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도 한몫 한다.
◇주류 문화로 자리 잡은 e스포츠…국내 인식 개선은 언제쯤?
한국 LoL 대표팀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무실세트 전승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LoL뿐 아니라 '스트리트 파이터 V'에서 김관우(43)가 금메달을, '배틀그라운드(PUBG) 모바일' 대표팀이 은메달을, 'FC 온라인'에서 곽준혁(23)이 동메달을 각각 따냈다. 한국은 이번에 출전한 모든 아시안게임 e스포츠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e스포츠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그만큼 e스포츠 산업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로, 향후 올림픽에 채택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뉴주는 지난해 전 세계 e스포츠 시청자 수가 5억3200만명에 달했으며 이후 연평균 8.1% 증가해 2025년 6억41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세계서 실력 뽐내는 e스포츠 선수들
세계에서는 이미 주류 문화로 자리 잡은 e스포츠지만 한국 선수들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획득한 메달의 의미와 무게감은 남다르다. 한국은 e스포츠 종주국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2 e스포츠 실태조사'를 보면 2021년 기준 세계 시장에서 국내 e스포츠 산업 비중은 9.9% 수준으로 2019년 16.5%, 2020년 14.6%에서 매년 줄어드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뛰어난 선수들이 각종 대회에서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고 있을 뿐 정작 e스포츠 시장 규모와 인프라, 정부의 투자·지원 체계 등이 세계 수준에 못 미친다는 소리다. 반면 북미, 중국 등은 e스포츠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는 게임을 질병으로 취급하는 왜곡된 시선마저 있다. 게임 산업을 멍들게 한 '셧다운제'를 폐지한지 2년도 안 돼 묻지마 범죄를 게임과 연관 짓는 듯한 수사당국의 발표가 나왔다. 아직까지 사회 저변에 게임을 둘러싼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LoL, 한국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다만 게임과 e스포츠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일부 부정적 시선과 별개로 e스포츠 선수들은 뛰어난 성적을 내며 종주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빛내고 있다.
그 결과 e스포츠의 중요성과 의미는 국내에서도 점차 커지는 모습이다. 이상혁은 "LoL은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며 "부모님 세대는 게임을 잘 모르거나 알아도 스타크래프트 정도만 아는 경우가 많은데 자녀들에게 설명을 들으면서 함께 본다면 그 자체로 큰 기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e스포츠협회와 SK텔레콤 등 국가대표팀 후원사, 넥슨·라이엇게임즈 등 게임 종목사 역시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대회 전 사전답사는 물론 현지 경기장과 똑같은 환경을 조성해 시뮬레이션을 실시하는 등 선수들이 게임에 몰두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콘텐츠 수출 효자 산업 K-게임, 산업 발전·지원 방안 나올까
게임은 국내 전체 콘텐츠 수출의 약 70%를 차지하는 효자 산업이다. 게임 산업 수출액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10% 증가해 2021년 86억7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결국 게임에 씌워진 부정적 프레임을 걷어내고 관련 산업을 보다 키우려면 업계와 정부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e스포츠 관련 투자는 당연하고 게임 본연의 재미에 집중한 완성도 높은 작품을 개발하려는 게임사들의 의지, 인재 양성 등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지원과 세제 혜택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맞물려 게임을 여가 문화이자 하나의 소통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이용하려는 태도,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이번 e스포츠 선수들의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을 계기로 인식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피어오른다. 당장 여야 정치인들은 e스포츠 선수들의 메달 기록에 축하와 격려를 보냈다.
◇"게임, 당구나 골프와 다르지 않아"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LoL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을 축하하며 '게임은 질병'이라고 주장해온 일부 진영을 비판했다. 허 의원은 "꼭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게임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주권자의 취미 생활이다. 당구나 골프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이 있다고 누구도 당구와 골프를 질병 취급하지는 않는다. 항저우에서 전해오는 낭보를 접하며 앞으로도 게임을 '질병'이나 '해악' 취급하려는 모든 시도에 단호히 맞서겠다"고 말했다.
e스포츠를 비롯한 게임 산업 지원방안을 찾겠다는 약속도 이어졌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내 e스포츠 환경이 열악함에도 거둔 성과이기에 선수들이 만들어 준 결과에 기뻐함과 함께 이제 선수들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게임은 단순한 흥미 위주의 오락이 아닌 프로그래밍,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 작가의 창작(스토리), 음악과 함께 과학, 문화가 합쳐지고 이제는 스포츠까지 융합된 4차 산업"이라며 "국내 게임 산업이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면서 관심을 갖고 응원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길을 찾겠다"고 전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e스포츠의 발전은 계속될 것"이라며 "국회에서 좋은 정책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지난 2021년 국내 e스포츠 산업 발전을 목표로 한 '이스포츠(전자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e스포츠 산업 판로개척과 활성화를 목표로 세제 혜택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게 골자지만 현재 계류 상태다.윤선영기자 sunnyday72@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영애 "이승만기념관 건립 기부금, 화합하잔 의미였다"
- 14살 청소년이 방콕 호화 쇼핑몰서 `탕탕탕`…4명 사망
- ‘정치 엮지 말라’ 조민, 베스트셀러 등극 후 당당한 근황…함박미소 ‘눈길’
- 신체 은밀한 곳에 마약 숨겨 입국한 20대 여성, 징역 3년
- `조폭 전유물은 옛말…문신인구 1300만 시대, 염료는 안전할까
- 美 "한덕수 권한대행 역할 전적 지지…수주 내 韓美 고위급 대면외교"
- 거부권 행사 韓대행 탄핵 놓고 고민 깊어지는 민주당
- 정부, 2030년 경제안보품목 의존도 50% 이하로 낮춘다… "핵심광물 민·관 공동 투자·탐사 지원 강
- `전기먹는 하마` AI에 빅테크도 `원자력` `신재생` 영끌하는데… 에너지가 정치판 된 한국
- `ABC` 강조한 구광모… "`도전과 변화` DNA로 LG 미래 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