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감사원·방통위, 정치 성향 따라 신뢰도 확 달랐다[2023 신뢰도 조사]

문상현 기자 2023. 10. 3.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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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사상 최초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숙제는 분명했다. 검찰과 정치를 확실하게 분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집권 2년 차, 검찰은 정치 대결의 중심에 섰다.
2020년 2월10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전국 지검장 및 선거담당 부장검사 회의에서 “검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은 부패한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연합뉴스

검사 출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검사가 정치인으로 직함을 바꾼 사례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사례는 조금 다르다.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 조직 전체를 대표하는 위치에서 특정 정당의 대선후보로, 대통령으로 직행했다. 직전까지 검찰총장이던 대통령의 등장은 한 개인의 정치 참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의심받을 수 있어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검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은 부패한 것과 같다”라며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2020년 2월10일 전국 지검장 회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공약 발표 질의응답(2022년 2월14일)에서는 “검찰이 얼마나 국민의 검찰로서 제 기능을 하느냐는 정치권력이 개입하지 않고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을 얼마나 존중해주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 스스로 인정한 취임 이후 그의 숙제는 분명했다. 검찰과 정치를 확실하게 분리하는 것이었다.

윤석열 정부 집권 2년 차, 검찰과 정치는 분리되었을까? 〈시사IN〉은 2007년부터 매년 한국 정치·국가기관 등의 신뢰도를 측정해왔다. 16년 동안 이어진 정기 여론조사를 통해 시계열 데이터를 축적했다. 단순 신뢰도 수치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변화하는 추이가 가리키는 방향에서도 가늠할 수 있는 게 많다. 올해 〈시사IN〉이 조사한 국가기관 신뢰도와 과거 데이터를 비교한 결과, 검찰을 바라보는 시선에 정치색(色)이 덧입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이, 성별, 직업, 지역으로 구분한 검찰 신뢰도는 비슷한 수치로 나타났지만 지지 정당별, 즉 정치 성향으로 구분할 경우 양극단을 오가는 결과가 나왔다. 검찰이 정치 대결, 진영 대결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실 신뢰도 따라간 검찰 신뢰도

〈시사IN〉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검찰 신뢰도는 줄곧 ‘불신 구간’인 3~4점대에 머물렀다. 신뢰도 조사는, 전혀 신뢰하지 않으면 0점, 보통이면 5점, 매우 신뢰하면 10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 0~4점까지 ‘불신 구간’, 5점은 ‘보통’, 6~10점까지는 ‘신뢰 구간’으로 구분한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검찰 신뢰도는 주로 3점대에 머물렀다. 2017년 3.88점, 2018년 3.47점, 2019년 4.15점, 2020년 3.53점, 2021년 3.70점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조사에서는 3.66점을 기록했다. 2년 차인 올해 조사에서도 3.66점으로 지난해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신뢰도 자체는 불신 구간에서 매년 소폭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모양새이지만, 조사 결과를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지난해와 올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국민의힘, 또는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들이 정반대의 평가를 하면서 전반적인 신뢰도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민주당 지지자들은 검찰 신뢰도에 1.68점을 줬다. 〈시사IN〉이 신뢰도 조사를 처음 시작한 이후 검찰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받은 가장 낮은 점수였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6.29점을 줬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검찰에 준 점수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인 데다, 최초로 검찰 신뢰도가 ‘신뢰 구간’에 들어선 지점이기도 하다. 올해 민주당 지지자들은 검찰 신뢰도에 1.67점을 매겼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6.20점을 줬다. 지난해 처음으로 나온 양극단을 오간 신뢰도 평가 결과가 굳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림 1〉 참조).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 지지자들과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검찰 신뢰도에 비슷한 점수를 줬다. 2017년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검찰 신뢰도에 4.17점을,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은 3.25점을 매겼다. 2018~2021년에도 양당 지지자들은 3~4점대를 줬지만 평가는 역전됐다. 2020년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검찰 신뢰도(3.67점)가 민주당 지지자들의 검찰 신뢰도(3.37점)를 앞질렀고, 2021년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3.32점,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4.44점을 줬다.

지난해와 올해 나타난 검찰에 대한 극단적 신뢰도 평가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였을까? 2019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그 시작이라는 게 법조계와 정치권의 공통된 해석이다. 2020년으로 이어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문재인 정부의 갈등이 극심해지면서, ‘친문재인 대 반문재인’ 또는 ‘친윤석열 대 반윤석열’이라는 구호가 정치권과 검찰을 둘로 쪼갰다. 앞서 〈시사IN〉 조사에서 확인된 양당 지지자들의 검찰 신뢰도 평가가 역전된 것도 이 시점이다. 2021년 초 검찰총장직을 내려놓은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 해 7월 정치 참여를 선언했다. 이후 국민의힘에 입당해 대선후보가 되어 이듬해 당선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새 정부는 사정(司正) 작업에 착수했다.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함께 겨냥했다. 야권의 과거와 미래 권력 모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법무부·국토교통부·통일부 등 사정기관이 아닌 정부 부처들도 전 정권 시절 각종 업무를 되짚었다. 이곳에서 나온 수사 의뢰 또는 고발이 대부분 검찰로 향했다. 동시에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 출신 인사들을 중용했다. 대통령실과 총리실, 정부기관 주요 보직에 ‘윤석열 사단’으로 꼽히는 인사들을 임명했다. 행정부 심부에 자리 잡은 검찰 출신 인사들에 대한 야권의 반발과 우려가 커졌다.

검찰을 둘러싼 ‘정치 구도’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검찰 신뢰도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에서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검찰은 우리 편’이라는 일종의 일체감을 느끼고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그에 비례해 적대감을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검찰 신뢰도와 대통령실 신뢰도를 겹쳐보면 더 명확히 드러난다. 검찰 신뢰도가 대통령실 신뢰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07년부터 2021년까지, 〈시사IN〉 정례 조사에서 역대 정부 청와대(대통령실) 신뢰도는 지지 정당, 정치 성향에 따라 1점대 아니면 6점대를 받았다. 2022년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신뢰도에 대해서도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6.56점, 민주당 지지자들은 1.03점을 줬다. 2023년에는 국민의힘 지지자 6.71점, 민주당 지지자 1.11점이었다. 지난해와 올해 검찰이 양당 지지자에게 받은 신뢰도 점수와 비슷한 수치다. 검찰은 2021년까지 양당 지지자들로부터 3~4점대를 받아왔다.

2022년 10월11일 감사원 국회 국정감사에 나온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시사IN 이명익

감사원·방통위 신뢰도도 ‘극과 극’

〈시사IN〉 신뢰도 조사 대상 국가기관 중, 정치 성향에 따라 신뢰도 평가를 구분할 경우 검찰과 같은 추이를 보이는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또 다른 사정기관인 감사원이다. 감사원 신뢰도는 통상 4점 중후반대로 ‘불신 구간’의 끝자락, ‘보통 구간’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했다. 지지 정당별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시사IN〉 조사가 처음 시작된 2007년부터 2021년까지 정부가 바뀌고 정치 성향이 달라도 응답자들은 감사원에 대부분 4점 후반, 때로는 5점 이상을 매겼다. 올해도 감사원의 신뢰도 전체 평균 점수는 4.28점이었다.

지지 정당별로 감사원 신뢰도 평가에 처음으로 차이가 벌어진 시점은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다.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들은 5.87점,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들은 3.30점을 줬다. 올해는 그 차이가 더 벌어졌다. 국민의힘 지지자 5.97점, 민주당 지지자 2.88점이었다(〈그림 2〉 참조).

감사원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 문재인 정부 시절의 사업과 정책, 결정을 겨냥한 전방위 사정을 이끌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등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이루어진 사업과 결정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는 ‘정치 감사’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감사원은 이례적으로 감사 도중에 수사 요청 사항을 발표하거나,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채 사무처 권한으로 검찰에 수사 요청을 하기도 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수사 의뢰 형식을 통해 검찰 수사의 밑그림이 됐다.

9월15일 감사원이 전 정부 청와대 관계자와 장관들을 검찰에 수사 요청한 ‘문재인 정부 부동산·고용 통계 등 조작’ 의혹 발표 과정에는 앞서의 이례적인 사례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연장을 거듭하며 네 차례나 진행한 이번 감사는 전 정부 표적 감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 밖에 관가와 정치권에선 감사원의 전방위 감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직사회 기강 잡기를 통한 행정부 장악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감사원은 최근 증원을 추진 중이다. 감사원 계획대로라면 올해 연말까지 100여 명이 충원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직사회 안팎의 이권 카르텔 타파’ 메시지가 나온 직후 추진됐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이 정치 쟁점화하면서 정치권 갈등이 깊어졌다.ⓒ연합뉴스

올해 처음 〈시사IN〉 기관 신뢰도 조사 대상에 오른 방송통신위원회도 지지 정당에 따라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5.11점, 민주당 지지자들은 2.89점을 줬다. 이명박 정부 시절 언론 장악의 중심에 있었다는 의혹을 받은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지명되고, 국회 동의 없이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점이 정치 쟁점화하면서 신뢰도 평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전체 평균 신뢰도는 ‘불신 구간’인 3.57점이었다.

대통령실 신뢰도는 3.48점을 기록했다. 역대 정부 집권 2년 차 청와대와 비교해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2년 차인 2014년 청와대 신뢰도는 4.61점, 2017년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5.27점이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는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부터 조사됐다(3.87점).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은 지난해 조사에서도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낮은 신뢰도를 보였다. 윤석열 정부 이전까지 청와대 신뢰도 최저치를 기록한 시점은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졌던 2016년 박근혜 정부 임기 말이다. 3.62점이었다.

올해 대통령실 신뢰도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데에는 최근 불거진 주요 이슈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2.87점),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2.47점),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의혹(2.94점), 김건희 여사 등 주변 관리(2.66점)에 대한 정부 대응 신뢰도는 모두 2점대로 ‘불신 구간’에 머물렀다.

〈시사IN〉 신뢰도 조사 대상 기관은 총 9곳이다. 가장 높은 신뢰도를 기록한 국세청만 유일하게 ‘보통 구간’에 머물렀다. 나머지 8곳은 모두 3~4점 ‘불신 구간’에 머물고 있다(〈그림 3〉 참조). 신뢰도가 가장 낮은 기관은 국회였다. 기관별 전체 평균 점수는 용산 대통령실 3.48점, 국회 3.06점, 대법원 4.24점, 검찰 3.66점, 경찰 4.57점, 국가정보원 4.24점, 국세청 5.18점, 감사원 4.28점, 방송통신위원회 3.57점이다. 지난해까지 조사 대상 기관이었던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기준 완화 등으로 이번 조사에서 제외했다.

 

■ 이렇게 조사했다
- 조사 의뢰 : 〈시사IN〉
- 조사 기관 : 한국갤럽조사연구소
- 조사 일시 : 2023년 9월10~12일
- 조사 대상 :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 조사 방법 : 유무선 RDD 병행 전화 면접조사(유선 15.5%, 무선 84.5 %)
- 응답률 : 8.2%
- 가중치 부여 방식 : 성별, 연령별, 지역별 가중값 부여(셀 가중) 2023년 8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기준
- 표본 크기 : 1000명
- 표본 오차 : ±3.1%포인트(95% 신뢰 수준)

*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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