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新 근로시간제도 …직장인 80% "주 52시간 이하가 적당"[첩첩산중 노동개혁]

2023. 10. 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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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의 한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헤럴드경제 DB]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과제 가운데 첫 머리에 꼽히는 ‘노동개혁’, 그 중에서도 근로시간 제도개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올 상반기 ‘주 최대 69시간제’를 꺼내들었다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던 고용노동부가 국민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등을 진행한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을 발표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표 시기는 이미 추석 이후로 밀렸다. 이 탓에 정부가 새로 마련한 근로시간제도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정부가 주춤하는 사이 직장인 10명 중 8명은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현행 52시간을 유지하거나 그 이하로 낮추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안갯속' 새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신중한 고용부

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성희 고용부 차관은 지난달 13일 기자들과 만나 “(설문조사를) 전문가들이 분석을 진행 중인데 가능한 이른 시일 내 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근로시간 제도개편’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 발표는 지속해서 뒤로 미뤄지고 있다. 이미 추석 이후로 미뤄진 상태다. 고용부가 6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집단심층면접(FGI)은 지난 6~7월 진행됐다. 고용부는 이를 토대로 지난 9월 정기국회에서 새로운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이 논의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고용부가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보완할 것을 지시한 사항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3월 고용부 내 '2030 자문단'과 근로시간 제도개편 관련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고용노동부 제공]

앞서 고용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주 최대 69시간’ 근로가 가능토록 설계한 개편안은,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했던 ‘주 120시간 노동’ 발언을 재소환하기도 했다. 이는 윤 대통령의 지지층으로 알려진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MZ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은 출범 후 첫 의견문을 통해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는 노동자 근로조건을 개선해 온 국제사회 노력과 역사적 발전 과정에 역행한다”며 “개편안에 반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1주일에 최대 69시간 근무하고 몰아서 쉴 수 있다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이 장기휴가는커녕 노동시간만 늘릴 것이라는 지적이 거셌다. 이에 윤 대통령은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새 개편안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추석 연후 이후 고용부는 지난 6~7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발표를 시작해 이를 기반해서 새로 설계한 제도개편안을 순차적으로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고용부 설문 결과와는 별개로, 민간기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 10명 중 8명은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현행 52시간을 유지하거나 그 이하로 낮추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는 것으로 나왔다. 이 조사가 이뤄진 시기는 정부가 조사를 실시한 시기와 비슷해 해당 조사가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구체적으로 올해 6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 응답자의 46.7%는 주 48시간 이하로 최대 근로시간을 낮추는 것이 적절하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현재의 주 52시간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답변이 34.5%로 많았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씩 5일을 기준으로 주 40시간이지만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해 52시간까지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주 최대 근로시간을 56시간(6.2%), 60시간(6.8%), 64시간(3.5%) 등 기존 52시간보다 늘리는 것이 적절하다는 응답은 소수에 그쳤다.

정부가 올해 3월 발표했다가 수정하기로 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처럼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응답은 2.3%에 불과했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46.2%는 주 52시간제 아래서도 야근 등 초과근로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초과근로를 하고 있다’는 답변 비율은 남성, 정규직, 제조업, 300인 이상 대기업 소속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초과근로를 하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일주일 평균 초과근로 시간을 물어본 결과 ‘6시간 이하’(51.1%)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6시간 초과 12시간 이하’(36.8%)를 많이 선택했다.

대기업도 편법 '연장근로'..."노동시장 단축돼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헤럴드경제 DB]

현행법상 초과근로 한도인 주 12시간을 넘겨 일한다는 응답도 12.1%나 됐다. 이는 최근 드러난 LG디스플레이 근로감독결과에서도 드러난다. 고용부에 따르면 이 회사는 법정 연장근로 한도 내에서만 근로시간을 입력·관리하면서 한도를 초과한 시간에 대해서는 별도의 시스템을 통해 대체 공가(보상휴가)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130명에 대해 총 251차례(총 7120시간)에 걸쳐 연장근로 한도를 상시로 위반했다. 이 회사에 재직 중이던 팀장급 직원 A씨는 지난 5월 서울 여의도 한강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고인은 사망 전 한 달간 하루 평균 12.5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을 했다.

아울러 초과근로를 하고 있다는 응답자의 52.2%는 초과근로수당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초과근로수당은 전혀 주지 않거나(22.7%), 수당을 일부만 준다(22.7%)는 것이다. 초과근로수당 대신 교통비나 식비 등 경비만 준다(6.7%)는 응답도 일부 있었다. 이번 설문조사를 의뢰한 직장갑질119의 야근갑질특별위원장인 박성우 노무사는 “이번 설문을 통해 직장인 절반이 일상적인 초과근로를 하고 있고,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한국의 노동시간 관련 최우선 과제는 실노동시간 단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사연 "韓 근로시간 OECD 1위, 출산율 악영향"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제공]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주장이기도 하다.

지난 7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실린 ‘일-생활 균형시간 보장의 유형화’ 연구논문에 따르면 OECD 31개국 가운데 2021년 기준 연간 근로시간 평균이 가장 긴 나라는 연간 1915시간을 일하는 대한민국이었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OECD 평균 1601시간보다 314시간 더 많이 일했고,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1349시간)보다는 연간 50%가량 더 많았다.

주당 근무시간이 48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근로자’ 비율 역시 한국은 18.9%로 OECD 평균(7.4%)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국은 1점 만점 중 노동시간 영역에서는 0.11점으로 28위를, 가족시간 보장 영역에서는 0.37점으로 20위를 기록하며 모두 최하위권인 4유형에 속했다.

연구진은 “한국은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보고될 정도로 OECD 국가 중에서 독보적으로 출산율이 낮고 일과 가족을 양립하기 어려운 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유연근로제나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에 앞서 근본적으로 짧은 근로시간을 전제로 자녀를 양육하는 부부가 모두 일할 수 있는 사회, 저임금 위험이 낮은 노동시장 환경의 조성이 더욱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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