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마음PT] 대통령이 된 사람, 되지 못한 사람

함영준·마음건강 길(mindgil.com) 대표 2023. 10. 3.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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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 아이젠하워, 맥아더 그리고 노무현

# 미국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쓴 《인간의 품격》은 문제아, 반항아, 속물, 방탕아, 장애자, 동성애자 등 인간적인 면에서 많은 결함이나 불리한 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에 기여한 8명의 위대한 인물들의 성장 스토리를 소개했다.

이중 특별히 관심을 끈 것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 제34대 대통령이었다. 편안하고 온화한 사람이란 선입견과 달리 실제 그는 평생 매우 화를 잘 내고 그 격렬한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무진장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었다.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학교 시절부터 반항적인 문제아였던 그는 도박, 흡연, 태도 불량으로 벌점을 달고 살았다. 임관 후 진급도 늦어 51세가 돼서야 장군이 됐다.

그러나 이후 비범한 지도력을 발휘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총수가 되지만 그 시절에도 욕설과 감정의 폭발로 기자들 사이에서 ‘성미 고약한 미스터 뱅(Mr. Bang)’이란 별명까지 들었다. 이런 자신의 성정을 일기장에 쓸 정도였다.

“분노로는 이길 수 없다. 분노에 휩싸여서는 생각조차 명확하게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그런 성정(性情)에 굴복하지 않고 늘 중용과 합리성을 찾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생도 시절 누구도 기대하지 않던 이 ‘충동적 반항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 되었을뿐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까지 되었다. 그가 재임 중이던 1953년부터 1961년은 미 역사상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시절이었다.

# 젊은 아이젠하워를 부관으로 거느리고 승진 가도의 문을 열어 준 이가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 장군이었다. 그는 아이젠하워 장군과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제32대 대통령 등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으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린 인물이었다.

미 육사 웨스트포인트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역사상 최연소(50세)로 육군 참모총장에 오른 맥아더는 머리나 능력 면에서는 최고였으나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1932년 대공황 시절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불황타개책으로 군사비를 대폭 삭감하려고 하자, 맥아더는 대통령 면전에서 저주섞인 폭언과 함께 참모총장직을 그만두겠다며 대통령 집무실을 박차며 나가려고 했다.

이때 루스벨트 대통령이 보여준 자제력은 놀라왔다. 침착한 태도로 격분한 맥아더를 진정시키고 그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훗날 루스벨트는 미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을 지낸 대정치가로 자리매김을 한 반면, 맥아더는 자신의 마지막 소망인 백악관을 향한 꿈을 부관이었던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국회 초선의원(민주당) 시절인 1988년 국회본회의에서 대정부 질문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 나는 분노를 생각할 때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1989년 국회의원 시절 5공 청문회 도중 국회의사당내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의원 명패를 집어던져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때 나도 전두환씨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전직 대통령인데 저런 식으로 분노를 폭발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이미 국민들에게 욕먹고 유배돼 사면초가에 빠진 사람에게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자신과 맞지 않으면 상대가 누구든 가차 없이 비판했으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여과 없이 표출했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받을 비판과 질책도 참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들과 충돌했고 적을 만들었다.

언제부턴가 한국사회는 이 사회의 부정적인 면만 들춰내고, 자신의 성정(性情)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이 “속시원한 사이다”라며 각광받는 시대가 됐다.

1989년 12월 31일 백담사에 유배중이던 전두환 전대통령이 국회 5공 청문회 증인으로 나와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때 의원석에 있던 노무현 의원이 “국민의 비난은 누가 책임 지냐”고 외치면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명패를 집어던졌다. /조선DB

데이비드 브룩스는 자신의 책 《인간의 품격》에서 21세기 지금은 더 빨리 성공하고 유명해지려는 ‘빅 미(Big me)’시대지만, 20세기 겸손, 절제, 헌신을 대변하는 ‘리틀 미(Little me)’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인간은 누구나 결함이 많은 ‘뒤틀린 목재(crooked timber)’이지만 자기보다 대의를 중시할 줄 아는 겸손, 천직에 대한 헌신, 더 큰 목적을 위해 자신의 욕망과 본성을 억누를 줄 아는 절제의 미덕을 회복하기 위해 평생 스스로를 단련시켜 나가야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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